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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당/2020년 가을호

[계간 문파문학 2020 가을호 시마당] 김동균 - 환송

환송

 

 

외판원이 노래를 튼다 노래엔 외판원이 등장한다 약국 왼쪽을 돌아 나온 외판원이 노래를 따라 찾아왔고 외판원들이 모여 있는 외딴곳에서 외판에 대해 은밀한 얘기를 나눈다 수요일에는 단상에 올라간 외판원이 외판에 실패하는 대표적인 사례를 설명한다 “제 경우에는 지하상가 입구에서……” 로 시작하는 이야기가 들린다

 

목요일의 외판원이 중요한 점을 선별해서 수첩은 까매진다 금요일에는 그리고 토요일에는 여행용 가방을 끌고 나가는 외판원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외판원끼리 마주쳐서 외판을 식별하기도 한다 “반갑습니다” 마치 처음 보는 물건인 것처럼 모든 쓰임에 관해서 빠짐없이 알려주겠다는 듯이

 

외판원은 친절하고 정중하게 고개 돌리는 법을 안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의 목소리는 마지막으로 묻는 것처럼 들린다 물건을 잠시 내려놓고 노래를 틀어야 한다 외판원의 노래다 “그런데 정말 죄송하지만…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줄 수 있나요?” 이어폰을 뺀 학생은 수요일에도 목요일에도

 

무릎에 올라온 외판 물건을 생각 중이다 어제는 물건을 사지도 않는 사람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외판원이 나오는 노래를 틀었다 외판원을 만나본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그걸 들었다 “외판 같은 건 모두 다 관심이 없어요” 그렇게 말하면 외판원이 새로 기재되는 월요일이다 외따로 다니는 외판원이 돌연 나타난다 어느샌가 여행용 가방에 물건을 잔뜩 집어넣고 있다 물건이 언뜻 솟아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외판을 잘하는 방법은 질문을 유도하는 거라고 한다 선별된 외판원이 주말 내내 외판원이 등장하는 노래를 다시 틀고 어째서냐고요? 왜 그런 거냐고요? 판매 매뉴얼을 따라 읽는 그는 영락없이 새로 시작한 외판원이다 외판원끼리 하하호호 통성명을 마치고 새 외판원은 외판할 물건을 둘러보고 있었다 골목을 빠져나오면서 들었던 웃음소리가 어쩐지 아직 쟁쟁하다고 구 외판원은 말하고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새 외판원은 약국을 끼고 골목으로 복귀하고 있다 그의 여행용 가방이 뚱뚱한 걸로 봐서 아무래도 외판에 실패한 대표적인 날이 아닌가 싶다 약사는 이 모든 것들을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김동균 | 202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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