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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당/2020년 가을호

[계간 문파문학 2020 가을호 시마당] 장현 -「index.」

「index.」

 

 

July 11, 2020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겨 답을 합니다.

여러 번 얘기했지만,

두 가지 일을 하느라 장현이가 그 누구보다 힘든 학기를 보냈을 겁니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과제를 마무리해줘서 고마워요.

혹시라도 학우들에게 상대적 박탈감 등의 감정이 생길까 봐

소소한 과제들도 표나게 주문했던 걸 이해해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제 검색하다 보니 <22: Chae Mi Hee>가 발간되었던데

억수로 축하해요!

장현이 만날 날이 아직 먼 것 같은데

직접 받는 기쁨을 위해 참아보겠습니다.^^

 

방학 동안

좋은 시간, 힘든 시간, 휴식의 시간을 두루 나누면서

더욱 큰 시인의 발판을 다지길 바랍니다.

 

이영숙

 

선생님의 메일 받았고

 

 

June 31, 2020

 

 

채미희 계속해서 MBTI검사를 권해 데이터 빅데이터 속에서 너 이러다가 이걸로 나중에 뭐 하는 거 아니야? 오빠, 해봤어? 했어? 했어? 언니, 얼른 해봐 오빠, 오빤? 언니 나랑 똑같이 나왔네 근데 우리 왜 이렇게 다르지? MBTI 이제 재미없어 그치 이제 애착 유형 검사해보자 오빠, 걱정 마 오빠도 부정에 부정이네 자기 부정 타인 부정 여기 그런 사람들 많더라 공부 열심히 하고 내일 봅시다 그래

 

 

July 1, 2020

 

읽은 것들

음성 인식으로

 

박상륭

두 집

사이

 

새로 세든 방에서 늙은네는, 어디다 머리를 둬 다리를 뻗을까 궁리하다, 사흘도 지나지 않아, 방향(方向)을 잃어버렸다. 망망대해나 사막 가운데, 또는 달도 별도 없는 밤의 큰 숲속에서도 아니고, 하필 자기의 소잡한 방에서, 처음엔 한 방위(方位)를 잃고, 그에 따라 남은 세 방위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츠쯧, 땀도 못 낼 일이 또 있겠는가. 의식하고서든 못하고서든, 동쪽 되는 데가 언제든 동쪽이고, 서쪽 되는 데도 또한 그렇다고 믿어 지내는 일이란, 삶이, 일상(日常)이라고 이르는 사각진 석반 위에 세운 상륜탑 같은 것이라고 알게 하는데, 그 노반 부분이 흔들리기 시작한다면, 어지러울 테다, 온전치 못할 테다, 땀도 못 낼 테다. 궁여지책으로 늙은네는, 지남철을 하나 구해, 책상 겸용의 개다리상판 한 귀퉁이에 놓고, 남북을 가늠하기에 의해, 동서를 가름해보기도 했으나, 나중엔 차라리 그것이, 늙은네의 방향감각에 더 많은 차질과 혼란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게 되어, 잡동사니들을 처넣는 상자갑 속에다 던져 넣어버리고 말았다. 그 상자갑은, 추억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거나, 수전노의 돈궤(그동안 얼마나 많은 화폐개혁이 있었을 겐가), 또는 아르빠공의 마음의 풍경을 담고 있었을 것이었는다. 철 따라 해 뜨는 곳이나 지는 곳이 조금씩 바뀌기는 했으나, 그러는 동안 이사도 몇 차례 했다 해도, 스물 둬 살 이후부터의 평생을 살아온 도시의 동쪽은 늘 동쪽에만 있어온 것이지, 이사를 했다 해서 북두칠성까지도 (자루 도는 것 말고) 자리를 옮기는 것은 아니었던 것(동쪽으로 이사를 했으니 동방이 없어져 버린다면, 하늘 소맷자락 속에는 여분의 방위가 億數로 많을 테다), 그래서 이제는 거의 고정관념이 되다시피 한 방위들이, 지남철에 의하면, 예를 들면, 이제껏 동방이었던 것이 차라리 북쪽에 가까운 방향이라고 일러주고 하니, 믿을 수 없는 것도 그것이던 것이었던다. 이런 눔의 지남철에 의지해 항해를 하는 수부가 있다면, 그는, 해 뜨는 것 보러 부상(扶桑)을 향했는데, 지는 해 함께 함지(咸池)에 꼴깍 함몰하고 말 테다. 방향감각이라는 것도 그렇게 본다 는즉슨, 어떤 특정한 고장을 오래 살다 보면, 일종의 고정관념을 형성하는 모양인데, 그럴 것이, 술이라도 취해 몸부림을 하며 자는 중, 북두성 자루 돌 때 따라 어디 만쯤 빙그르 돌았다는 경우, 이 취한 손이, 오줌이 마렵게 되었다거나, 목이 갈해 더듬기 시작했다 하면, 이제 문제가 생기는 법인 것. 거기 분명히 있어야 될 문이나 숭늉 그릇이 없어지고, 대신 이해할 수 없는 딴 것들이거나 벽이 가로막아 있는데, 이제 그는 이 평면 벽의 미궁에 빠지게 되는다. 이차원의 세계로 풍 빠져 내린 것이다. 그 미궁은 다름아닌, 방위, 또는 방향에 대한, 그의 고정관념 자체였을 것이다. 그러고도 늙은네가 더 못 참을 일은, 이 방에서는, 동서남북이라는 네 방위 중의 하나가, 자기의 눈이, 깜냥껏 시퍼렇게 뜨고 보는 앞에서 실종을 해버리는, 그 불쾌한 경험인데, 늙은네가 자기의 방향감각에 의해서든, 또는 (이제는 집어치워 버린) 지남철에 의해서든, 그쪽 구석〔角〕이 동쪽이며, 저쪽 구석이 서쪽이고, 그러면 이쪽 구석이 마땅히 남쪽이 된다고 하고, 마지막으로 북각(北角)을 정리해내려 하면, 거기 마땅히 있어야 할 그 방위가 민틋하게 깎여 없어져,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는 그것이다. 이 방에서는 언제든, 돌(咄), 방위 하나가 깨끗하게 지워져 없고만 있다. 그러자부터, 이 한 삶의 늙은 탑은, 그 노반 되는 데쯤부터서 흔들리기 시작하고 있다.

 

제39일

 

이제는 모든 기를 완전히 풀어버리자. 완전한 이완을 성취해버리자. 할 수 있으면 다시 오기 위해서, 이 세상과의 하직을 선언하자, 안녕히 가셔요, 입속에 머금었던 나를, 쓰레기 더미 위에 내뱉으며, 그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전에 때로 나는, 몸속의 막힘을 트기 위해, 마음으로 더불어 육신적으로 정진한 적이 있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통로를 막아버리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정진할 때인 듯하다. 육신에 억류돼 부달리는 혼을 육신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일, 생명의 줄을 끊어버리는 일, 하나의 큰 꿈을 갖고 광야로 나아가는 일, 누덕 진 살을 벗고 다시 말로서 환신하는 일, 그래서 동시에 (……)

 

 

2020년 7월 1일

 

 

7월 2일

 

비 그친 바람 몸을 훑고 지나가면 낯익은 기온 좇아 일어서는 피부 위로 흘러내린 그늘 안에서 비 내음이 장소로 불어나고, 어릴 적 장마 예보 혹은 만화영화가 켜진 TV 곁에 앉아 이마 기대 바라봤던 베란다가 흔들려오는데 빗방울 없이 커다란 비의 예감만이 창 안으로 숨소리 흘리며 여러 시간의 이른 여름 덧칠했다.

 

 

2020년 7월 14일

 

시끄럽고 지하철 타면 어느 좌석 앉더라도 내가 볼 수 있는 가장 큰 대각선을 쳐다보는 습관이 그렇게 창밖을 대각선으로 반대편 라인으로 지나가는 열차와 열차 속 사람들과 외국인을 만난 표정으로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고 있는 채미희가 서 있고 승강장에는 늘 슬리퍼를 신은 사람이 자신의 발 쳐다보고 나는 오랫동안 마스크를 착용해온 사람처럼 마스크처럼 사람처럼 마스크처럼 사람처럼 모르게 모르게 모르게 창밖 지나가며 다시 역으로 다시 역으로 다시 역으로 종착역으로 내가 내릴 곳을 지나치지 않고 정확하게 자리를 양보하는데 연인 사이에 한 사람 걸어가지만 앉을 수 없고 자, 여기

 

박상륭

 

(……) 그것은, 세모진 것인데, 세모난 세상에서는, 세모난 형태만이, 세모꼴의 억류로부터 벗어나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긴 그렇다, 시간도(縱橫으로 몇 개의 삼각이 중첩된 것인지, 이런 자리에서 따질 것은 아니로되, 모래시계 속의 시간을 보면) 과거, 현재, 미래가 뒤집히는 데서 삼각의 모양을 띠고 있다. 삶도, 나기,늙기,죽기라는 삼각의 꼴을 취해 있으며, 해도 부상, 중천, 함지에 이르는 삼각진 운행을 계속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달도, 초승, 보름, 그믐 속에 이우는 달이라는 삼각의 자궁에서, 맺혔다,익었다,쇠하는 성쇠를 되풀이하고 있다. 늙은네가 방위를 하나 잃었을 때부터, 늙은네의 한 세계가 세모꼴져버려, (혜능에 의하면, 마음은 형상이 없거나, 아니면 모든 형상이라고 이르되) 늙은네의 마음 자체가 세모꼴져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축생도(畜生道)나 '몸의 우주'는 삼각지다. 거기 어떤 '점(點, vija)'의 인식이 시작된다면, 사각이 잃어버리게 된, 그 한 각이 되살아날지도 모르긴 하다.

 

이상우

 

옆에 앉은 남자가 말을 거는 거야. 비행기에서? 갑자기? 그래. 부드러운 남자가 말하는 거지. 당신을 기다렸어요. 그럼 내가 대답해. 날 아세요? 너무 구려서 뇌졸증이 올 것 같아. 비행기에서 만나는 건 너무 흔해. 그럼 이건 어때, 여행 중에 관광객들에게 치이다 지쳐 골목길로 들어서는데, 골목길에서 새하얀 티셔츠를 입고 서 있던 잘생긴 남자아이가 말하는 거야. 안녕하세요. 당신을 기다렸어요. 걔가 장기를 뜯어 가는 놈이거나 마약 팔이 같은 거야? 아니 멍청아. 모르겠네. 모르겠다고? 나는 신혼여행을 간 거야. 신혼여행을 가는 비행기 좌석에서, 아니면 사방에 줄줄 햇빛이 사과 주스처럼 흘러내리는 하바나의 골목길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연인은 어디에 있는데? 어디 말없이 숨어 있겠지 내성적일 테니까. 아니면 죽었거나. 너무 소심해서 내가 죽였나? 아무튼 그래. 죽은 걸로 하자. 그럼 좀 자연스레 깊이가 생기겠다. 그치? 죽었는데 신혼여행을 간다고? 아니. 신혼여행이 아니라 이별 여행이었어. 추모 여행이거나. 손가락에 반지가 끼여 있겠지. 어쩌면 두 개가 끼여 있을지도. 지나가며 보이는 온 사물들이 껍데기로만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테고 풍경을 마음의 무게와 상관없이 가볍게 흘러가겠지. 네 양심도 방금 다 흘러가 버린 것 같은데? 죽음을 이용하는 건 비겁해. 그건 세상에서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재능이 정말 눈곱만큼도 없어서 아예 재능이라는 말 자체를 무의식중에

 

일기를 쓰고 지하철 몸통 칸 대각선 좌우로 한강 내려다 보이고 이 위치가 제일 좋고 나는 시간의 흐름을 잊었지만 곧 터널 내리고 사람들은 내일을 위해 집으로 갔다 어제처럼 나도

 

Jang hyun, I hope you sleep well

 

조금 더?

 

이상우

 

스스로 지워버린 애들이나 쓰는 수법인 거야. 알았어. 알았어. 아무도 안 죽었어. 됐지? 그냥 좀 지쳐서 떠난 거야. 누구랑 헤어졌거나. 회사에서 짤렸거나. 누가 죽었거나. 죽음은 금지야. 알았어. 그리고 지쳤다고 여행 가면 사람들은 배알 꼴려 할걸. 그 개새끼들한테 실제로는 나도 가난뱅이라 어디 못 간다고 좀 전해줘. 근데 막상 그 새끼들은 잘만 돌아다닌 거 아니야? 그래서 골목길의 잘생긴 남자애가 뭘 어쩌는데. 아니야. 조금 더 다른 상황들을 생각해봐야겠어. 비행기가 정말 별로야? 타원형 창문으로 햇빛이 맑게 펼쳐져서 잠깐 동안 눈을 가늘게 뜨고 있어야 하는 장면을 떠올려봐. 알아. 그런 곳에서 그런 일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꽤 있겠지. 근데 이코노미 좌석에서 몇 시간째 방귀도 참으면서 다리를 오므리고 있는데 얼굴에 기름때 낀 놈이 옆에서 느끼하게 말을 걸어오면, 속으로 제발 좀 닥치라고 생각하거나 낙하산으로 목을 매달아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싶다고만 생각할걸. 알았어. 비행기는 포기해볼게. 그 잘생기고 귀여운 남자애는 언제쯤에 만나고 싶은 건데? 처음? 아니면 중간? 마지막이 좋을 수도 있겠다. 이상하고 고된 여행을 마칠 때쯤에, 여행 중에 비처럼 피할 수 없이 닥쳐온 어떤 순간에 이르러 과거를 떠올리게 되고 개 같은 과거가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 현재로까지 배어오고 가 그것을 넘어선 최악의 일들까지 겪게 되고 나서 (……)

 

 

 

참고 문헌

 

 

* 박상륭,「두 집 사이」,『창작과비평』2001년 봄호(통권 111호) pp.137-145.

* 박상륭,『죽음의 한 연구』, 문학과지성사, 2020.07.

* 이상우,『두 사람이 걸어가』, 문학과지성사, 2020.07.

* 장현,『22: Chae Mi Hee』, 문학과지성사, 2020.07.

 

** 2020.07.01. : 소설가 박상륭 타계 3주기

 

 

 

 

장현|2019년 제1회 박상륭상을 수상하며 매체에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 시집 『22: Chae Mi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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