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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시인

[이 계절의 초대시인] 최서림

 

 

 

★ 최서림 시인의 신작시 ★

*

 

 

고흐의 해바라기

 

아를르의 태양은 해바라기를 닮았다.

우울을 몰아내기 위해

작업실을 태양빛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친구를 초대하기 위해

온통 해바라기 그림만으로 메웠다.

 

이 세상에서 복제품이 가장 많은

가장 잘 팔리는 고흐의 해바라기,

식당에도 술집에도 모텔에도

대중목욕탕에도 빠짐없이 걸려 있다.

 

구겨진 마음을 펴주는 그림인가.

돈을 끌어 모아다 주는 부적인가.

강남 화실에 그림 배우러온 노인이

고흐의 황금빛 해바라기부터 모작하고 있다.

 

코로나 불경기로 우울한 이 도시

갤러리마다 해바라기 꽃들이 만개해 있다.

고흐처럼 가난한 화가들에게

해바라기 꽃 그림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

 

 

  민감한 애인

 

 

날씬하고 곧게 뻗은 몸매처럼 성질 또한 직선이다

 

하루라도 다정하게 만져주지 않으면 서먹해진다

 

술 냄새가 나면 금방 밀어낸다

 

술기운 다 빠져나갈 때까지 반응도 않는다

 

목에 힘을 주면 소리가 자꾸 기어들어간다

 

소리를 내려고 하면 할수록 소리를 내주지 않는다

 

따뜻한 바람으로 온몸 가득 채워줘야

 

비로소 맑고 부드러운 소리로 화답한다

 

촉촉한 입술을 좋아하는 그대는 밍크고래보다 민감하다

 

입술 모양에 따라 소리를 달리 내는 내 사랑, 빈센트 바하.

 

 

 

 

최서림 시인의 대표시 

*

 

 

아청(鴉靑)빛 시간

 

 

淸道라는 아청빛 시간에 푹 젖었다 왔다

 

시인인 나를 부러워하는, 나보다 더 시인다운 농부를 만났다

 

소들이랑 한 식구처럼 살고 있었다 소를 닮아 눈망울에

 

초겨울 저녁 검푸른 물빛 하늘이 출렁출렁 담겨 있었다

 

마들이라는 두꺼운 시간 속에 아청빛 시인이 살고 있다

 

간판들이 켜질 무렵 얽매이지 않는 말이 되어 돌아다니고 있다

 

도봉산 겨울 능선 위 저녁 하늘빛이

 

노시인의 눈에 흘러내릴 듯 가득 차 있다

 

광주 진월동에는 이른 새벽부터 푸른 저녁까지

 

편백나무로 시를 짜는 목공이 있다

 

총알이 스친 다리처럼 시리지만

 

옷깃을 여미게 하는 묘한 빛깔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말에 찔리고 베여 갈라터진 이 땅 어디에서도

 

붕대 같은 저녁이 찾아오듯이

 

시의 순간만큼 짧은 아청빛 시간이 왔다 간다

 

 

/  

 

 

푸른빛으로 돌아오다

 

 

마른장마에도, 온통, 푸른빛이었다

 

묵계리(默溪里) 가는 길은 푸른빛으로 돌아오는 길, 푸른빛은 늑골 사이로 나온다 심장에 새치가 희끗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새치 사이로 옛 강이 슬며시 다시 흐르고 물새가 흩어진다 깊은 물 우에서 햇빛이 꺾여 푸른빛을 낸다 굽은 빛이 속살 깊숙이 파고든다 안개를 먹은, 혼돈의 급류에 끌려 다녀 무릎 꿇은 중년의 빛은 아름답게 휘인다

 

여행은 굽은 마음이 잠시 허리 펴는 것, 길은 늑골 밑에서 기어 나와 그곳으로 돌아간다 나이 삼십 넘으면 인생에서 송장냄새가 난다던 후배, 그의 여로(旅路)는 아직 햇살 뒤꽁무니에 매달려 발버둥치리라 내게도 빛이 직선으로만 운동하던 때가 있었다 강바닥까지 비추며 물살을 몰아가던

 

사춘기, 어린 늑골 사이로 늘 강물이 깊었고 물새가 하얗게 울었다 햇빛을 잡아먹고 강은 푸르게 내장을 뒤척였다 얼굴 없는 푸른빛 속에서 자맥질하다 잠들고……어느 날 햇빛 아가리 속으로 뱉어져……

 

묵계리까지 여행은, 낯・익・어・아・름・다・운 안개 속에 먼저 가 숨어 있는 나에게로 가는 길이었다

 

 

 

/

 

물금

 

 

바닷물이 숭어 떼처럼 파닥파닥 밀려올라오다 허리쯤에서 기진해 멈춘다 날숨과 들숨으로 강물과 혼몽히 몸을 섞는다 썰물을 내려 보내는 갯벌이 그리움으로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곳, 그녀와 나 사이 매일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진다 내 그리움도 그곳까지, 그 선까지만 밀물져 가다가 헤매다 돌아오고 만다 그녀가 사는 곳이 곧 물금이다 대추나무 잎에 반짝이는 햇살처럼 영혼에 일렁이는 물결무늬처럼 떠있는, 어느새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버리는 물금, 물금 한복판에서 찾아 헤매게 되는 물금, 농익은 감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철퍼덕 맨땅에 떨어져 산산이 흩어지는 곳, 초로의 적막이 물푸레나무 회초리로 자신의 종아리를 후려치는 그곳이 물금이다

 

 

 

 

 최서림 시인의 詩作 노트 

 

시와 음악과 그림과 함께 놀기

 

1. 그림에 빠지다

2017년 여름방학 때부터 그림 그리기에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작품을 그린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냥 놀이 삼아 그리기 시작했다. 집에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쓰다 남은 크레파스가 몇 통 있어서 그걸로 시작했다.

그리다 보니 재미도 있고 카타르시스가 일어나는 느낌도 들었다. 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나무만 그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나무를 밑에서부터 위로 치솟아 올라가는 분수처럼 쫘악, 쫙 그렸다. 그렇게 나무를 그리니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중에 하나가 분노의 미루나무이다. 이 그림은 서대문형무소에 있는 통곡의 미루나무를 참고한 것이다. 나는 이 분노의 미루나무를 그리는 동안 대성통곡 했다. 그리고 뒷골 쪽에 깊은 쾌감을 느꼈다. 이 그림을 그리고 나니 가슴 속 울화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분노도 좀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이 그림은 다소 거칠어 지난 봄 인사아트플라자 특별개인초대전엔 내지 않았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그 그림이 가장 울림이 크다고 감탄하였다. 어쩌면 나는 그 그림을 비매품으로 할지도 모른다. 어쨌튼 내년 봄에 있을 이육사문학관 전시회에는 공개할 생각이다.

계속해서 4년째 그림을 그리다 보니 가슴에 화도 분노도 많이 가라앉았다. 처음엔 크레파스와 오일파스텔을 섞어서 그렸으나 울 6월부터는 유화로 바꾸었다. 서초동에 있는 지인의 화실에 나가 배우며 작업하고 있다. 내 그림은 거의 다 반추상화다. 현대판 문인화다.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 그림시이기도 하고 시그림이기도 한 나만의 독특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싶었다.

 

2. 고흐의 해바라기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 중 한 명은 아마 고흐일 게다. 고흐는 네덜란드 출신이고 아버지가 목사이다. 젊어서 개신교 전도사가 되어 탄광 등지를 돌아다니며 선교활동을 했다. 이것은 그의 초기 리얼리즘 풍의 그림과도 관련이 많을 것이다. 사람들은 고흐의 초기 리얼리즘 작품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주로 아를르 이후의 그림에 관심이 많다.

특히 관심이 많은 것은 그의 해바라기 그림들이다. 고흐는 일찍부터 우울증을 앓아왔다. 고흐가 해바라기 그림을 많이 그린 것은 그의 우울을 몰아내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노란빛의 해바라기는 태양빛이라는 긍정의 에너지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요새 코로나 19로 인해 전 세계인이 우울증으로 내몰리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노란색 그림이나 옷들이 많이 팔린다고 한다. 나도 그림 그릴 때 노란색을 많이 쓰는 편이다. 인사동에 가보면 갤러리마다 해바라기 꽃들이 만개해 있다. 그만큼 따뜻한 희망의 빛깔이 필요하다는 뜻일 게다. 오늘도 내가 그린 봄의 모태라는 작품을 구입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그 그림은 노랑, 연두, 초록으로 그린 것인데 노란색이 가장 많이 들어가 있다. 그 그림을 사고자 하는 사람은 노량진에 있는 고시원 주인인데, 원생들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주고 싶어서 구입한다고 했다.

그런데 해바라기 그림을 찾는 사람들 중엔 다른 부류도 있다. 해바라기 그림을 걸어놓으면 돈이 잘 들어온다는 생각에서다. 해바라기의 황금빛이 돈을 부르는 부적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강남에 사는 화가를 만났는데, 주위에서 해바라기 그림을 그려달라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순간 원시미술이 연상되었다. 원시미술에는 심미적인 측면보다 주술적 측면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요새 식당, 미용실, 술집, 모텔, 목욕탕 할 것 없이 해바라기 꽃들이 걸려있다. 그 생경한 해바라기 꽃들을 보고 쓴 것이 고흐의 해바라기라는 시이다. 결국 나의 미술행위는 시와 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3. 트럼펫을 짝사랑하다

 

작년 1년 동안은 그림을 전혀 그리지 못했다. 그 기간 동안 트럼펫을 배우느라 그림도 시도 가까이 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림 그린 것이 햇수로는 4년 되었으나 실제로는 3년 동안에 다 그린 것이었다. 첫 전시에 출품한 59점 외에도 그림이 많이 있다. 아마 3년 동안에 150점은 그렸을 것이다. 하루에 서너 점 그리는 날도 더러 있었다. 그리고 그림은 방학 때에만 몰아서 그렸다. 학기 중에도 그렸다면 나는 이미 쓰러졌을 것이다.

나는 집중력이 강해 무엇을 하면 그 일에 몰입한다. 2013년 중반에서 2014년 중반까지 1년 동안 시를 300편 이상 쓴 적이 있다. 너무 몰입하다 보니 제동이 걸리지 않아 잠을 이루지 못해 고통을 겪을 정도였다. 이른바 하이퍼그라피아 증상이 찾아온 것이었다.

시창작도 치유효과가 분명 있다. 시보다는 그림 그리기가 훨씬 효과가 크다. 그런데 미술보다 음악의 치유효과가 더 직접적이고 큰 듯하다. 나는 작년 가장 치유효과가 큰 음악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나는 원래 음치다. 같은 노래도 부를 때마다 박자와 음정이 다를 정도다. 그래서 노래보다 악기를 배우기로 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짝꿍이 교내 행사 때 트럼펫을 부는 것을 보고 그 소리와 악기에 완전 반해버렸다. 그때부터 나중에 시간과 돈이 있으면 트럼펫을 배우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다가 대학 와서 잊고 있었는데, 1980년대 초 5공 시절 가을날 종로 1가를 걸어가고 있었는데, 맑은 하늘을 쳐다보고는 갑자기 트럼펫을 불고 싶었다. 갑갑하게 억눌린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그땐 나 역시 운동권에 속해 있었고 돈도 시간도 없는 룸펜프롤레타리아였다.

그러다가 늦게 60이 넘어 트럼펫을 배우게 되었다. 1년 동안 중계동에서 서초동까지 가서 레슨을 받았다. 보통 피스로 소리 내는 데 6개월이 걸린다는데 나는 23주만에 소리가 났다. 그러자 신이 나서 동네 연습실에 가서 매일 연습을 했다. 악기라는 것이 하루만 상대 안 해주면 토라지는 애인과 같다. 이렇게 매일 연습하다 보니 시도 그림도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1년을 연습해도 고음과 저음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낙망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피스를 가지고 6개월 동안 연습하는 기초과정을 뛰어넘어서인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이도 많고 음악에 재능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트럼펫은 자기가 사랑하는 자만 상대해준다는 말이 있다. 결국 1년 동안 트럼펫을 나 혼자 짝사랑하다가 포기한 셈이다. 이때 쓴 시가 민감한 애인이다. 빈센트 바하는 내가 짝사랑한 트럼펫 이름이다. 결국 나는 시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최서림 시인 인터뷰 

 

 

최서림 | 1993년 『현대시』 등단. 시집 『이서국으로 들어가다』 『물금』 『시인의 재산』 등 다수. 애지문학상, 동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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