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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시인

[이 계절의 초대시인] 문태준

 

 

 

 

== 문태준 시인의 신작시 ==

*

새와 한 그루 탱자나무가 있는 집


오래된 탱자나무가 내 앞에 있네

탱자나무에는 수많은 가시가 솟아 있네

오늘은 작은 새가 탱자나무에 앉네

푸른 가시를 피해서 앉네

뾰족하게 돋친 가시 위로 하늘이 내려앉듯이

새는 내게 암송할 수 있는 노래를 들려주네

그 노래는 가시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듯하네

새는 능인能仁이 아닌가

새와 가시가 솟은 탱자나무는 한덩어리가 아닌가

새는 아직도 노래를 끝내지 않고 옮겨 앉네

나는 새와 한 그루 탱자나무가 있는 집에 사네

 

*

 

휘어진 수양버들 가지에
봄빛은
새는
노래하네

간지럽게
뿌리도
연못의 눈꺼풀도
간지럽게

수양버들은
버들잎에서 눈 뜨네
몸이 간지러워
끝마다
살짝 살짝 눈 뜨네

 

 

 

== 문태준 시인의 대표시 ==

 

이별


  나목裸木의 가지에 얹혀 있는 새의 빈 둥지를 본 지 여러 철이
지났어요

  아무 말도 없이 가신, 내게 지어 놓은 그이의 영혼 같은 그것
을 새잎이며 신록이며 그늘이며 낙엽이 덮는 것을 보았어요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예전의 그이를 흙으로 거짓으로 다시
덮는 일에 지나지 않을 뿐

  나는 눈보라가 치는 꿈속을 뛰쳐나와 새의 빈 둥지를 우러러
밤처럼 울었어요

*

바람과 나무


  바람이 있을 때에 키 큰 나무가 기둥째 기우는 것을 며칠 마음
놓고 본다

  어제는 왼편으로, 오늘은 바른쪽으로 나무는 느긋하게, 시간
을 두고서, 그러나 바람에 따라 부드럽게 기운다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놓을 적에도,
  비스듬히 기운 나무는 서두름이 없이 천천히 바람을 벗고 제
자세로 돌아간다

*

첫 기억


누나의 작은 등에 업혀
빈 마당을 돌고 돌고 있었지

나는 세 살이나 되었을까

볕바른 흰 마당과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깰 때 들었던
버들잎 같은 입에서 흘러나오던
누나의 낮은 노래

아마 서너 살 무렵이었을 거야

지나는 결에
내가 나를
처음으로 언뜻 본 때는

 

 

== 문태준 시인의 詩作 노트 ==

올 봄에 오랜만에 신작시를 발표하는 것 같다. 화단에서 수선화의 새로운 움이푸르게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한 편의 시가 이런 푸른 생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태어났던 집도 산밑에 있었고, 지금 부모님이 살고계시는 집도 산밑에 있고, 내가 살고 있는 집도 산밑에 있다. 그래서 나의 생활은산으로 들어갔다 산에서 나온다. 나의 시도 산으로 들어갔다 산에서 나온다. 이 공간을 벗어나려고 한 적도 있었지만 그게 서두를 일도 억지로 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을 요즘은 한다. 산으로부터 집으로, 들판으로 물길처럼 나아가도 될 것이니 다만 정신이 수선화의 푸른 움 같았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 문태준 시인 인터뷰 ==

 

 

문태준 | 1994년 『문예중앙』 등단.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 곳』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등. 노작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서정시학작품상, 애지문학상, 목월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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