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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2021년 봄호

[계간 문파문학 2021 봄호 기획특집] 유종인 - 두 자화상 속에 드리워진 황홀경의 자아 혹은 무아

두 자화상 속에 드리워진 
황홀경의 자아 혹은 무아

 

 

창밖에 바람이 분다. 한때 탐라(耽羅)에 내려와 창밖 멀리 섬을 스치는 바람을 본 적도 있다. 오늘의 나와 그날의 나는 어느 것이 더 윗길인가. 그런 것이 있기나 한가. 창밖의 바람은 그 자신이 바람이라는 것을 알고 불까. 또 바람이 의식하는 ‘자신’이라는 것은 또 무언가. 그리고 자신이 겨울 속에서 불어서 겨울바람이라고 알고 작정하고 강퍅하고 춥고 거칠게 부는 것일까. 이내 기나긴 겨울이 가고 나면 그 바람 자신은 그만치 매몰차게 불었으니 자신에게 온정도 있고 따스한 정감도 있음을 깨닫고 그 생각을 고쳐먹을 수 있을까. 만물을 움츠리게만 하지 않고 소생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을 따스한 봄바람으로 의도하고 불기도 할까. 그러나 모든 현상의 배후엔 자연自然이라는 거대한 연기(緣起)의 흐름이 배어있다. 
흰소리 같지만 모든 예술적 인식들이 가지는 독창성이나 개별성은 자아라는 에고(ego)의 반열을 걷어내면 또 다른 진경(珍景/眞境)의 자연이 본래의 진면목을 드러낼 개연성을 지니지 않을까.
범박하게 그리고 보편적인 관점에서 예술은 개성의 구현이고 예술가 자신의 독특한 정체성(identy)의 창의적 발성(發聲)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독특한 체험들을 개성적 감각과 인식으로 수용하는 주체를 예술적 자아(自我)라고 상정하고 그 예술적 감수성을 높인 에고(ego)를 나름 적극적으로 옹립하는 것을 예술 활동의 주체성이자 심리적 근간(根幹)이라 여기는 게 예술 일반론일 수 있다. 그러므로 몰개성(沒個性)이란 말은 다른 여타의 경우도 그렇지만 예술 전반의 평가에서 아주 모욕적이고 치욕적인 평가의 한 준거가 되는 개념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이 몰개성의 개념을 좀 더 근원적인 자연 사물과 존재의 차원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여러 장르에서 개성적인 미학美學을 품는다는 것과 몰개성적 뉘앙스를 지닌 사물과 자아의 동일성(同一性)을 풍긴 무아(無我)의 미학을 갖는다는 것이 서로 정반대의 입장만은 아닌 것이다.
흔히 서정시의 창작이나 작동원리를 자아 동일성(自我同一性)이나 자기동일성(自己同一性)이라고 부를 때 달리 개성이나 중뿔나게 분별적 에고의 기세등등함을 내세우지만은 않는다. 그 사물의 자태나 인상, 특징적인 국면 속에 나(自我)라고 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갈마들어 있다고 보는 관점이 여실하다. 이것과 저것, 나我와 나 아닌 것(非我)이 극단의 분별심 속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국면은 불가적 혹은 선적(仙/禪的) 안목에서 보면, 예술이 그 개별 작품 안에 지니는 개성적 혹은 개별적 자아(自我)라는 것은 꼭 무아(無我)의 것과 대척적의 관계만은 아니라는 사유의 번짐에 있다. 즉 추사가 말하는 무아의 선취(仙趣/先取)는 예술적 견지에서 보면 그것도 일종의 개성적 혹은 예술적 자아의 성취와 깨달음으로 도드라지는 것이다. 무아와 몰개성을 단순 연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극성스러운 자아라는 밀림과 잡목림 한편에 무아라는 호젓한 공지(空地)의 풀밭이 햇빛과 바람과 늡늡한 대기의 기운을 품어 번지고 있을 따름이다. 고민과 열정의 자아라고 하는 것들을 모른 채 하지 않으면서도 무아는 그 그것들을 낙락하게 품어보는 넉넉한 가난인 것이다. 이른바 무심의 포월(抱越)이 개별 작품 속에 드리워지고 작동하는 것이다. 도가연(道家然)일 수도 있지만 그런 지향은 가능한 시서화(詩書畵)의 동양적 사유의 가만한 눈뜸일 수 있다. 몰아(沒我)가 자멸적인 멸아(滅我)만이 아닌 거듭난 자아로 회복할 수 있음을 타진하는 예가 없지 않다. 이럴 때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음과 있음이 서로 갈마들며 곧 드넓게 웅숭깊어지는 바이다.

 

윤두서, <자화상(自畵像)>, 지본담채, 38.5×20.5 해남 소장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와 추사(秋史) 김정희의 자화상은 자아가 지향하는 바와 탈속하는 바를 대비적으로 드러낸다. 무엇이 진정한 자아인가라는 물음을 시대의 간격을 두고 어쩌면 두 자화상은 묻고 되새기는 바가 오롯하고 완연하다.
공재(恭齋) 윤두서의 자화상은 그 탁월한 묘사력으로 실존의 아우라를 독실하게 보여준다. 윤두서는 고산 윤선도의 증손자이며, 다산 정약용은 윤두서의 외증손자라고 한다. 그런 학통과 명문을 지닌 양반가의 재원이 당대 출사하지 못했다. 그러니 공재는 스스로 출사(出仕)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적 버림받음과 개인적 버림이 상충했을 때 공재는 그 둘을 하나로 뭉쳐 뭉개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 때 세속적 자아는 무화(無化)되고 탈속적이고 개별적인 자아가 갱신된다. 불의한 세상을 버리고 또 다른 세상을 희구하며 즐기기 위한 자아가 점증(漸增)되기에 이른다. 완전한 탈속은 완전한 세속에 있음이다.
화면에 보다시피 상체의 목이며 몸통, 상반신의 의복, 얼굴의 귀나 상투나 관모(冠帽)의 부분이 없다. 의도적으로 생략한 부분도 있고 보관이나 배첩(褙貼) 과정에서 유실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여느 자화상이 측면을 그린데 비해 정면을 바라는 이 자화상은 형형한 눈과 생동감 넘치는 수염 자락, 붉은빛이 감도는 이목구비의 입체감은 한 선비화가의 내면을 도도록하게 현시한다. 그러나 이 자화상은 세상에 득세하고 선출된 사대부 양반의 자아를 반영한 득의양양한 모습은 아니다. 당대 붕쟁의 그늘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었던 출중한 천재 문인을 재야의 선비로 고스란히 주저앉힐 수밖에 없는 야인(野人)의 분기(憤氣)와 개결한 자족의 심연을 동시적으로 보여준다. 부러 관모冠帽를 다 그리지 않은 것은 그런 사회적 입신양명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둔 자유인의 의지를 드러내는 것은 아닌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옮겨 그렸을 공재의 마음이란 어떤 것인가. 공재 자신의 화제(畵題)나 자찬(自讚)이 없어 그 내밀한 심경을 육성 그대로 들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공재의 자화상에 찬문을 쓴 지음(知音)이 있어 간접화법으로 공재의 속내를 여실히 짐작할 수 있다.

 

 

“6척도 안 되는 몸, 
세상(四海) 초월의 뜻을 지녔네 
긴 구레나룻 휘날리고 얼굴은 붉게 물든 듯, 바라보는 이는 신선인가 검객인가 의심할만하네 
그래도 공손히 물러서고 사양하는 그 모습,  
독실한 군자로서 한치도 부끄럽지 않겠네 
내 일찍이 그를 이르기를 풍류는 고개지 같고, 빼어난 기예는 조맹부 같다고 하였으니,  
진실로 천 년 뒤에라도 그를 알고자 하는 자는, 다시 먹과 물감으로 닮은 데를 찾을 필요 없으리라. 윤효언이 스스로 그린 작은 초상화에 찬한다.” 
(以不滿六尺之身 有超越四海之志 飄長髥而顔如渥丹 望之者疑其爲羽人劍士 而其恂恂退讓之風 
蓋亦無愧乎篤行之君子 余嘗評之曰風流似顧玉山 絶藝類趙承旨 苟欲識其人於千載之下者 又不必求 諸粉墨之肖似, 尹孝彦自寫小眞讚)

 

 

일찍 공재의 절친이었던 이하곤(李夏坤)의 찬시(讚詩)는 윤두서의 화필뿐 아니라 그의 처지며 시대적 내면을 엿보는 훤칠한 단초가 된다. 찬시에서도 나오듯이 공재는 당대 서인 세력이 득세하던 정국에서 출사의 포부를 접고 재야의 선비로 문화적 식견을 온축(蘊蓄)하고 화필(畵筆)로 당대를 풍미했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세상에 대한 울분과 한탄, 다 식지 않은 소신마저 일거에 무화(無化)시킬 수는 없어 보인다. 공재는 당대 사회와는 다른 세상을 엿봤으니 그는 ‘공손히 물러서고 사양하는 모습’ 속에 안심입명(安心立命)의 처세를 지녔을 것이다. 그러니 세상에 나가 모함과 죽임의 그늘을 떨쳐내고 ‘신선인가 검객인가’ 묻을 수 있는 재야(在野)의 펀더기로 나아가 오지랖 넓은 자유의 걸음걸이를 바람과 햇빛 속에 드리웠을 것이다. 세상에 득세하지 않고 자아로 득의(得意)하려는 것이 야인의 속성이다. 그럴 때 분노의 형형함은 분노의 잉걸불에 매몰되지 않고 고개지(顧愷之) 같은 풍류(風流)를 내면화할 것이다. 세속적 자아는 무화되고 개안(開眼)하는 자아를 섭렵하기에 이른다. 공재의 ‘사해 초월의 뜻’은 세상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와 체제의 결속을 스스로 해체하는 심적 결단의 지속이다. 세상사 걸림돌이 없는 영혼이 어딨겠는가. 그런 걸림과 사회적 제약을 오히려 초탈과 탈속을 향해 지향해 간 한 야인의 형형한 눈빛은 진정한 자아를 끝없이 되묻고 있는 듯하다. 타성적이고 규범화된 세속적 자아를 걷어내고 ‘독실한’ 자유혼을 궁구하지 않았을까. 

김정희, <자제소조(自題小照)>, 32× 23.5㎝. 선문대학교박물관


공재의 자화상은 묻고 있는 듯하다.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고 생각하는 때가 있거든 그걸 어찌할 것인가. 그 시대를 고칠 것인가 그대 자신을 고칠 것인가. 그 모두를 도모할 것인가, 하고 말이다.
범부(凡夫)와 인물이 하나로 갈마드는 지경이 있다. 추사의 초상은 위작 논란에도 불구하고 자아를 넘어 초아(超我)의 담담한 경지를 엿보게 한다. 정제되고 출중한 면모를 부각시키는 초상화의 격식을 가만히 벗어버리고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자화상은 시골 노인의 완고함과 완숙에 이른 경륜의 편안함이 갈마들어 있다. 고집이 완연하되 그 고집조차 한물 물린 자유로운 천의무봉(天衣無縫)의 걸림 없음을 내다보는 듯하다. 이것과 저것, 미추(美醜)와 애증(愛憎)의 분별 속에 드리워진 자아self를 어느 정도 뜸을 들여 내보낸 소슬한 정기가 엿보인다. 봉발에 가까운 수염과 구레나룻과 귀밑머리와 노경의 자유자재自由自在로 돌아간 야인의 견식(見識)을 짐작게 하는 봉미안(鳳尾眼)은 문자반야(文字般若)를 이뤄가는 노대가(老大家)의 눈썰미를 대신하는 듯하다. 
소탈한 붓질은 소탈한 마음에서 나오고 소탈한 마음은 세상의 신산고초辛(酸苦楚)를 불심mercy of Buddha과 동양학적 통찰력으로 통과해낸 고졸한 심성이 아닐까. 노자(老子)식으로 말하면 대교약졸(大巧若拙)을 체득한 허심한 온축(蘊蓄)이 그 마음에 번져있지 않을까.
재밌는 것은 조선시대에는 드문 자화상의 관모(冠帽) 형식이다. 공재와 추사 공히 그 옷차림도 그렇지만 그 관모에 있어 최대한의 격식에서 살짝 그러나 과감히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윤두서나 김정희의 머리에 쓴 것은 갓과는 조금 다른 관모 형식인 탕건(宕巾)을 애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상시에 비교적 자유로운 차림의 일환이고 그런 자유로운 차림은 그대로 추사가 쓴 자찬(自讚)에도 그 진지하지만 거침없는 심경으로 오롯하게 도드라진다.

 

이 사람이 나라고 해도 좋고 내가 아니라 해도 좋다. 
나라고 해도 나이고 내가 아니라고 해도 나이다. 
나이고 나 아닌 사이에 나라고 할 것도 없다. 
제주(帝珠·제석천의 구슬)가 주렁주렁한데 누가 큰 마니주(摩尼珠·여의주) 속에서 상(相)을 집착하는가. 
하하. 
과천 노인이 스스로 쓰다. 
(謂是我亦可 謂非我亦可 是我亦我 非我亦我 是非之間 無以謂我 帝珠重重 誰能執相於大摩尼中 呵呵 果老自題)

 

추사 노경(老境)에 어찌 이런 마음이 돋았을까. 세속의 명리와 영화에 자신을 얽매이지 않고 온전히 놓여난 사람이라면, 그런 세상에서 규정하는 ‘나라고 할 것’이 딱히 무얼까 되짚어보게 하지 않을까. 허상에 물든 자아라는 것은 한낱 껍데기에 지나지 않고 분별심으로 나눠진 나라고 하는 것도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에 귀결될 뿐이라는 깨달음이 소박하게 개진된 문장이다. 그대 그리고 우리는 그 헛된 ‘상相에 집착하는가’라고 묻고 있다. 자아라는 완고한 집착의 허물을 온전한 옹립의 대상으로 이제껏 받자하니 한 것인가. 
붓다(釋迦牟尼)는 초기경전에서 자아를 규정하면서 존재를 얽어내는 다섯 가지 존재 다발인 오온(五蘊)을 말씀하신 바가 있다. 오온(五蘊; 色, 受, 想, 行, 識)은 존재의 물질적(신체적) 요소色와 정신적 요소(受,想,行,識)들의 얽힘과 무더기다. 이 육체적, 정신적 과정들로서 오온을 자신으로 여기는 과정과 그 결과의 파장이 생겨난다는 말씀이다.
인용하자면 “범부는 물질色이 나이고 나의 것이 물질이고 나 가운데 물질이 있어 나는 물질이고 물질은 나의 것이라고 속박되어 지낸다. 그런데 그 물질은 변하고 달라진다. 변하므로 그에게 우울과 슬픔, 고통, 절망이 생겨난다…(중략)…의식이 나이고… 의식이 나의 것이라고 속박되어…절망이 생겨난다. (-『쌍윳따니까야』 제4권 28~30쪽)”고 설파했다. 즉 ‘나라고 할 만한 것’은 결국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닌 것’의 흐름 중의 하나일 따름인 것이다. 여기에 얽매이고 집착하는 가운데 진정 ‘나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라는 깨달음이 수승해지는 것이다.
‘하하(呵呵)’라는 구절이 재밌는 육성으로 들린다. 꾸짖음과 책망의 기운이 서리기도 하고 ‘껄껄 웃음’으로 포용적인 관대한 자재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여기서는 중첩으로 썼으므로 소탈한 웃음의 자발적인 드러냄일 텐데, 세속적 자아를 멀리 한자리에 ‘나 아닌 나’가 드넓고 웅숭깊게 도래샘을 댄다. 자아의 있고 없음마저 품고 넘어선 자리에 무애(無碍)가 도사리고 무아(無我)의 삼매(三昧, samadhi)가 곁을 주고 있는 추사의 노익장을 그는 증득(證得)하고 있는 거나 아닌가. 
오로지 ‘나’라고 하는 분별적 자아상에 매몰될 때 진정한 나라고 하는 것은 요원해지고 ‘나는 너다, 그리고 모두다.’라는 대아적(大我的) 경지를 소슬히 바라보는 것. 추사의 노경의 자화상과 화제는 그런 황홀경(怳惚境)을 엿보거나 매만지며 가만히 능놀고 있는 거나 아닌가.
조선의 두 자화상을 예거(例擧)한 가운데 자아라는 궁극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일은, 인생은 어찌 바라봐야 하는가 하는 범박하지만 근원적인 질문을 맞닥뜨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는 어떤 자아를 거느리고자 하는가. 주워진 것이고 끌려가는 것인가, 지향하고 소소하게 깨닫고 열어가는 자아라는 허상을 깨쳐가는 것인가. 어찌 번지고 여닫고 훌쩍 뛰어넘어보고자 하는 것인가. 그러고 보니, 새삼 탐라에서 창밖으로만 봤던 비양도의 머리 위에 화관처럼 머물던 구름이 떠오른다. 다음에 또 다른 모습으로 재장구칠 것이다.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그 바람 타는 구름인가, 구름 타는 바람인가.

 

 

 

유종인 | 1996년 『문예중앙』 시 등단,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 시집 『숲시집』 외 5권, 시조집 『얼굴을 더듬다』, 산문집 『염전』, 『조선의 그림과 마음의 앙상블』 등. 지훈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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