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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2021년 봄호

[계간 문파문학 2021 봄호 기획특집] 전준엽 - 예술의 동력은 서정이다

 

예술의 동력은 서정이다
- 그림 속의 시, 시 속의 그림

 

 

역사는 말한다. ‘이념이 번성하는 시대의 예술은 피폐하다’고. 파시즘과 나치즘, 마르크시즘 광풍이 둥지를 틀었던 20세기 유럽과 아시아 일부지역에서 예술은 이념의 나팔수였다. 이런 시대는 예술가에게 투사적 삶을 요구한다. 그러나 예술가는 투사가 아니다. 투사는 이념을 먹고 살지만, 예술가의 양식은 서정이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 우리는 이념의 이름으로 예술의 본 모습을 왜곡시켜 왔다. 그런 시절을 견뎌야 했던 윤동주는 지사적 삶을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이 밉다고 노래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었던 그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여린 감성의 시인이었지만 오늘의 한국은 그를 ‘민족시인’으로 못 박아버렸다. 이념 전쟁으로 황막했던 시절, 감성의 불씨를 지폈던 모더니스트 박인환도 ‘감상주의 시인’으로 역사 속에 묻혔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받느니보다 행복하다’며 에메랄드빛 하늘이 보이는 우체국 창문 앞에서 연인에게 편지를 썼던 순정주의자 유치환은 ‘이념의 푯대’를 높이 치켜드는 ‘깃발’의 시인으로만 더 유명해져버렸다. 
시인이자 소설가 이응준은 ‘모더니스트 김수영은 이 해괴망측한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오용되고 악용돼 모욕 받아 왔다. 그는 정치 투사가 아니었고 그의 문학은 자유였지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며 현재까지도 우리가 범하고 있는 오류에 일침을 가한다.
현재 한국 지식층의 이념 과잉 현상 뿌리는 조선시대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그 시대에도 그랬다. 이념은 번성했고 실천은 미약했다. 백성이 근본이고, 사람이 먼저이며 하늘이라고까지 치켜세웠지만,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았다. 성리학 이념이 통치 철학으로 500여 년을 관통하는 동안 인간의 솔직한 감정 표현은 말라버렸고, 예술은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런 이념의 푯대 꼭대기에 감성의 깃발을 매단 이가 혜원 신윤복이다. 그는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탐미적 미감을 불러내 조선 회화의 혁명을 일궜다. 그래서 혜원 회화는 당대 이념에서는 이단이었다.
혜원의 예술은 기법과 내용 면에서 조선시대 사회 가치에서는 파격이었다. 화가를 백정보다도 아래에 두었던 예술 무지몽매의 시대에 그림으로 삶을 꾸렸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더구나 색채 사용을 지극히 속되고 천하게 여긴 당시 정서에서 놀라운 색채 감각을 확립했다는 것에서도 그의 예술적 신념을 읽을 수 있다. 조선시대를 통틀어도 혜원만큼 색채 운용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 화가는 없었다.
화면 구성에서도 서양미술에서는 100년 후 인상주의자들이 주제로 삼았던 생활 속 정서를 솜씨 좋게 다루었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사를 배경과 함께 스냅 사진처럼 한 장면에 담아낼 줄 알았던 천재적 조형 감각이 빛난다. 그림 내용도 당시엔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인간 본성을 세련된 형식으로 끌어올려 풍자와 에로티시즘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 시적 서정성까지 더했으니 맛깔스러운 그림이 될 수밖에.  혜원 그림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고급스러운 우리 미감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한국미술사 최고의 탐미주의자라 칭하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다.

 


성리학 이념을 깨뜨리는 도발적 상상력과 현대시


혜원 회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인 <이부탐춘(嫠婦耽春, 과부가 봄빛을 즐기다)>이다. 대갓 댁 후원에서 일어나는 장면을 두 여인네가 바라보는 관음증적 이미지를 담고 있다. 혜원은 과부를 등장시켜 에로틱한 장면을 만끽하도록 그렸다. 조선 통치 이념을 정면으로 비웃는 통쾌한 도발이다. 성리학 이념으로 무장한 조선시대는 특히 여인들에게는 가혹한 사회였다.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감정인 성에 관해서는 더욱 혹독했다. 체면을 중요시하는 사대부 가문의 여인들에게는 오로지 한 남편만을 섬길 것을 강요했고, 남편이 죽어도 개가하는 것은 상상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결혼 상대를 정하고 혼례 전에 남자가 죽으면 여인은 평생 홀로 살면서 수절하는 것이 양반 가문의 엄격한 법도였다. 이런 며느리를 배출한 집안은 명문가로 통했다. 그래서 젊은 시절 과부가 된 며느리를 둔 집안에서는 후원 깊숙한 곳에 별당을 지어 바깥의 유혹을 철저히 차단하는 것으로 수절을 도왔다. 가문의 영광을 위해 감정을 유폐시킨 슬픈 사회의 모습이었다.
혜원은 당대의 관습과 위선을 조롱하고 아름다움으로 포장했다. <이부탐춘>은 그런 그림 중 하나다. 별당 마님으로 불리는 젊은 과부와 시종으로 보이는 과년한 처녀가 눈앞에 펼쳐진 노골적 사랑 유희에 빠져 있다. 대갓집 후원에서 담장의 개구멍을 통해 들어온 한 쌍의 개가 격렬한 사랑의 마무리를 하는 중이다. 그 위에는 참새 한 쌍이 비행 중 사랑에 빠져 있는데, 질투하는 새 한 마리가 달려들고 있다. 바야흐로 사랑의 계절을 제철답게 수놓는 아름다운 정경이다. 후원 담장으로 감정의 용솟음을 막아보려 하지만, 인간의 법도로 자연의 순리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담을 넘어 들어온 봄꽃나무의 과감한 후원 진격이 이를 비웃는 듯하다.
과부의 표정은 사랑의 맛을 아는 듯 야릇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옆의 시종은 과부의 허벅지를 살포시 잡으며 알 듯 모를 듯한 짜릿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녀는 왼팔을 살짝 비틀고 움켜쥔 손으로 몸이 달아오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표현들이 에로티시즘의 진수다.
이 그림은 제목에서도 그렇듯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감정을 거침없이 보여주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혜원의 심중은 그림 전체에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곡선 구성에서도 읽을 수 있다. 나무, 사람, 새, 개는 모두 곡선을 위주로 그려져 있다. 감정의 순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질적 요소는 담장이다. 모두 직선이며, 벽돌이나 기와가 규칙적 질서 속에서 반복되고 있다. 성리학 이념으로 감정을 통제했던 조선시대를 은유하는 표현이다. 
이를 깨뜨리는 감정의 흐름은 담장을 과감하게 넘어온 꽃나무로부터 시작된다. 꽃나무를 따라온 우리의 시선은 중앙의 소나무로 이어져 두 여인에게로 모아진다. 여인들의 시선을 따라가면 소나무에서 비죽 나온 가지와 솔잎으로 옮겨지고, 다시 새들의 사랑놀음의 장면을 타고 두 여인이 즐기고 있는 사랑 유희의 결정판인 개들의 행위에 이른다. 노골적 사랑의 표현임에도 그림 보는 재미가 쏠쏠한 것은 두꺼운 비상식의 벽을 깨뜨리는 상식의 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혜원의 그림에서 우리는 한 편의 시화詩話를 감상하는 것이다. 소재에서 자유로운 현대시에서도 혜원의 그림을 관통하는 일상의 본질적 아름다움, 서정 속에 숨은 생명의 근원에 대한 천착을 엿볼 수 있다.

 

 

공장 담벼락 애기호박 넌출 아래서, 진순이년 그날 시집갔다. 마른하늘에 갑작스럽게 소나기 한줄금 후두기고 갔는데도, 일꾼 박씨가 “고것들 참 욕 본다”며 한참을 희희덕거리다 지나갔는데도 

오래 붙었다 

진순이 년 오늘 아침 새끼 내었다. 우글부글한 새목숨들 여섯인지 일곱인지 늘어진 배꼽 아래 퍼다 놓고 진순이 년 저도 이제 어미라는 이름으로 새로 태어났다. 

살다가 손바닥만큼이라도 수가 틀리면 아무렇게나 내뱉기도 했던 ‘개씹’같다는 그 말, 아서라, 하늘 아래 그 어디에서 저만큼이나 애틋한 일 자주 있었던가, 개씹이여, 아직 눈뜨지 않은 순한 목숨들로 이어지던 대낮같이 환한 혼신의 짓거리여


                                                      - 정윤천 「개씹」 전문

 

 

시적 서정성의 무게를 보여주는 그림


황동규의 시를 읽어본다.

 

창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를 않고 등불들은 다만 그 숱한 향수와 같은 것에 싸여가고 주위는 자꾸 어두워갔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 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 황동규 「시월 6」 부분

 

바람결이 스산해지기 시작하는 계절에 읽으면 가슴 아리게 만드는 시다. 가을바람처럼 가슴 시리게 하는 그림도 있다. 시적 감성이 풍부한 그림으로 독창적 회화 세계를 만들어낸 밀레이의 <낙엽>이 그렇다. 낙엽을 메타포 삼아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혜원의 회화가 진한 사랑의 색채로 서정성을 보여준다면 존 에버렛 밀레이가 보여주는 밀도 높은 서정성은 시심을 자극한다. 
밀레이는 라파엘전파의 중심인물이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시대 대표적 미술 양식으로 불리는 라파엘전파는 당시 유럽 미술 흐름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여준다.
이즈음 서양미술의 주류를 틀어쥔 곳은 프랑스였다. 현실 자체를 사진처럼 그리려 했던 사실주의가 유럽 미술을 장악하고 있었고, 빛이 만드는 순간적 이미지를 추적하려 했던 인상주의가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아가던 시절이었다. 두 사조 모두 보이는 현실을 대상으로 어떤 방식으로 그릴 것인가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런데 영국의 젊은 미술가들은 보이지 않는 세상을 탐구했다. 그들이 생각으로 품은 것은 르네상스 이전 시대인 고딕 회화 어법이었다. 그래서 그룹 이름으로 르네상스 회화의 상징적 화가인 라파엘을 내세웠다. 즉 라파엘 이전의 회화 양식을 당시 감각에 맞게 발전, 계승하겠다는 뜻으로 ‘라파엘전파’라고 붙인 것이다.
현실감 물씬 풍기는 사실주의 기법으로 비현실 세계인 신화나 정신 영역인 종교 그리고 고전 문학을 그리려고 했다. 이야기가 풍부한 상황을 하나의 장면으로 압축하는 구성을 따르기 때문에 시적 상징성이 중요하게 됐다. 이런 것들이 라파엘전파 회화의 독특한 서정성으로 자리 잡았다.
이 작품은 밀레이가 자신의 회화 어법을 완전히 다진 시기에 나온 것이다. 여기서 낙엽은 쇠락, 그리고 죽음을 암시한다. 가을 저녁 같은 세월을 고스란히 안고 바라보는 인생은 이 그림처럼 스산하겠지. 그런 심정을 실감나게 부추기는 이미지로 작가는 소녀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낙엽을 끌어모아 태우는 소녀들은 청순하고 예쁘다. 소녀와 쇠락한 낙엽이라는 상반된 세월 이미지를 가을 저녁 풍경으로 연출해 인생의 덧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낙엽 타는 연기로 물든 가을 저녁 무렵은 가슴 저미는 풍경이다. 이 그림의 배경이 그런 분위기다. 스코틀랜드 퍼스, 로지에 살았던 작가의 집 안마당이 그림의 무대로 알려져 있다. 이곳의 짧은 가을은 사려 깊은 성품을 지녔던 밀레이에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좋은 소재였다. 이 그림이 그런 연유로 나온 것이다.
황혼기의 삶의 무게를 애수 어린 풍경에다 담아보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은 당시 교류를 가졌던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의 영향이다. 가을의 우울한 분위기를 좋아했던 밀레이는 특히 낙엽 태우는 냄새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기도 했다. 낙엽 타는 냄새를 ‘지나간 여름의 향내’라고 풀어냈을 정도였으니까.
해가 막 지평선을 넘어간 시간, 들판을 바라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낮과 밤이 교차점, 하루의 기운이 바뀌는 이런 시점을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절묘한 비유로 표현했다. 사물의 정체를 확인하기 어렵고 실루엣이 선명해지는 시간에 보이는 개와 늑대는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비유다. 풀이하면 적과 아군을 분별하기 어려운 상황을 빗댄 것이다. 
밀레이는 이런 저녁 풍경에서 삶과 죽음의 분별이 불분명한 환상을 보았다.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어스름한 빛이 보여주는 혼돈 속에서.
낙엽 더미를 둘러싼 네 명의 소녀들은 각기 다른 느낌으로 그려져 있다. 애조 띤 얼굴을 하고 있는 왼쪽 끝의 소녀는 이 일과는 무관하다는 표정이다. 시선은 정면을 보고 있지만 초점이 희미하다.
낙엽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더미 위에 올려놓는 소녀는 먼 곳에다 시선을 두고 있다. 마치 이 세상 너머의 세계에 관심이 있다는 듯. 그래서 환상적으로 보인다. 이 두 소녀는 똑같이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있다. 이 때문에 낙엽 더미가 선명하게 보인다. 그래서 이들의 낙엽 태우는 행위에서는 엄숙한 의식을 치르는 분위기가 나타난다. 그 옆의 소녀는 기도라도 하는 듯 눈을 감고 있는데 명상적으로 보인다. 손에 과일을 든 키 작은 소녀는 넋 놓고 타는 낙엽을 바라보고 있다.
인생을 바라보는 각기 다른 시선 또는 삶의 방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각기 다른 삶이지만 똑같은 죽음을 맞는 게 인생이라는 냉엄한 진리를 말하고 있다. 그런 생각은 낙엽 더미가 죽음을 상징하는 봉분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확인이 된다. 네 명의 소녀가 만든 낙엽 더미이기 때문이다. 지평선 너머의 여명은 이 그림을 애잔하고도 신비로운 분위기로 완성시킨다. 끊임없이 불빛을 그리워하는 황동규의 시 「시월 6」을 떠올리면서.

 

 

 

전준엽 | 화가. 국내외 개인전 37회, 단체전 350여 회 수상. 성곡미술관 학예실장, 문화일보 기자. 저서 『데
칼코마니 미술관』 등 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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