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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2021년 여름호

[계간 문파문학 2021 여름호 기획특집] 동시영-김광규 시의 구성법 분석

김광규 시의 구성법 분석

동시영

 

 

1. 머리말


쥬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는 “시적 예술은, 긍정적 거부, 심미적, 형식적인 통일성에 대한 지속적인 거부를 하며 인간의 비균질성에 대한 확신을 웅변적으로 진술한다” 했다.
문학은 언어로 하는 예술적 혁명이다, 시적 언어, 시 텍스트는 다른 어떤 장르보다 섬세하고 체계적인 거부의 도구를 요구한다. 예술적 행위에 의하여 예술의 밖에 있어야 한다. 시가 쓰여지는 한, 시 쓰기의 방법은 완성도 전형도 없다.
로만 야콥슨Roman Jakobson은 “시에 나타나는 다양한 형태학적 분류, 상호 관계에 대한 설명을 총체적으로 하다 보면, 연구자는 예상치 못한 균형 잡힌 구조, 등가적 형태의 효과적 누적, 상호작용을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이 글은 김광규 시인의 시 텍스트가 가지는, 언어로 하는 섬세한 체계의 혁명, 시 쓰기의 전략, 구성 방법을 분석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는 그의 텍스트에서 시적 구조가 보여 줄 균형 잡힌 형태의 효과적 누적, 그 상호작용의 발견을 위함이다. 이를 위한 텍스트는 그의 선집, 『안개의 나라』로 한다.

 


2.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과 구성


김광규 시인의 시 텍스트는 일상어의 직설적 언술을 쓰고 있다. 표층 읽기에서 보이는 수사법적 현란은 거의 없다. 낮은 톤으로 말하는 무게 있는 어조의 사유가 흐를 뿐이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구조는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이다.
이 같은 대립 양상의 ,텍스트 구성을 위한 역할을 분석해 보기 위해, 먼저 「미래」를 읽도록 하겠다.

 

19시 30분 서울역 도착
기차 시각표에 적힌 그대로
세련된 상표 붙은 인형들 싣고
서둘러 특급열차 달려간 뒤
초여름 들판에 빈 철로가 남는다
꼬불꼬불 밭둑길 논둑길 따라
타박타박 걸어가는 어린 여학생
하얀 블라우스와 까만 치마
훈풍이 스쳐가고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그녀의 앞날
논물에 얼비치어 눈이 부시다

- 「미래」 전문

 

「미래」에는 두 개의 장면이 병렬되어 있다.
1연의 디스코스Discourse와 2연의 디스코스들은 철저히 대립적 관계로 짜여져 있다. 1연의 주체Subject는 “세련된 상표 붙은 인형들”로 사람이 사물화 되어 있다 . 이는, 이미 돈 등 물질에 깊이 경도된 사람들의 기표다. 세련된 상표 붙은 인형들이란 기표가 번쩍이는 광채를 드날리고 있다.
2연의 주체는 “하얀 블라우스와 까만 치마를 입은 어린 여학생”이다. 그는 순수한, 제 빛만 내는 두 개의 색, 하얀, 까만 옷을 입고 있다. 이는 세련된 상표 붙인 인형들과 대립하는 순수의 기표로 드러나 있다. 따라서 이들 주체들은 대립항으로 마주 서 있다.
그들이 가는 길을 보자. 1연은 자동차 길 등보다 완벽하게, 일탈할 수 없는, 확정의 길, 철로를 가고 있다. 그들이 지나간 뒤에도 초여름 들판에 빈 철로가 남아서 그들이 간 길을 또다시 확연히 보여 주고 있다.
2연에서는 “어린 여학생이 밭둑길 논둑길 따라 타박타박 걸어가고” 있다. “알 수 없는 훈풍”, 그것은 비록 따뜻하지만, 바람은 길의 확정성을 해체하는 기표다. 주체가 가고 있는 길은 참으로 알 수 없는 불확정성의 길이다. 길의 모양은 “밭둑길 논둑길”이므로 구불구불하다. 그 길은 “논물에 얼비쳐 눈이 부시고” 흐릿한, 복합성의 길이다. 이처럼 두 개의 주체가 가고 있는 길도 하나의 대립쌍으로 확연히 드러나 있다.
도착 시간도 대립항의 언표들이다. 1연 주체들은 19시 30분에 도착한다, 2연의 주체는 1연의 주체들처럼 명확한 도착 시간을 모른다. 흐릿할 뿐 분명하지 않다. 도착 장소도 그렇다, 1연의 주체가 도착하는 곳은 서울역으로 명시되어 있으나 2연의 주체가 도착할 장소는 분명하지 않다.
속도도 대립쌍을 이루고 있다. 1연의 주체는 “서둘러 특급 열차”를 타고 가지만 2연에서는 “타박타박” 가고 있다.
이는, 영화 기법에서, (평범한 장면들의 연속만으로는 관중의 마음에 전달할 수 없는 어떤 사상, 사유 등을 전달하기 위한) 전혀 반대편에 있는 장면을 보여 주는 역동적 편집, 몽타주 기법과 유사하다. 두 개의 연은 나란히 텍스트 위에 놓인 두 개의 현이며 그들은 끝나지 않고, 닫히지 않는 주제를 연주하고 있다. 표제, 「미래」를 보면 미래에 경도된 텍스트로 보이나 꼭 그러하지는 않다. 다성악의 연주는 독자의 몫이다. 정보량의 증대도 독자의 역할을 기다리고 있다.
김광규 시인의 텍스트들이 가진 이 같은 구성법은 능동적 독자를 요구한다. 우리 시대는 탈중심decentering, 독자 중심시대다. 그 한 가운데서, 발신자sender인 시인과 수신자receiver인 독자 사이의 가역성에 의한 읽기가 이루어진다. 쓰기와 읽기가 해체된 읽기, 끝없는 쓰기의 황홀을 누리게 한다. 그의 텍스트들은 이 같은 읽기를 통해, 롤랑 바르트oland Barthes의 후기 기호학이 말하는, 미세한 세부 사항, 은밀한 내부성,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선 무엇을 맛볼 수 있게 한다.
이 같은 구성법은 「영산靈山」, 「나」, 「어느 지사志士의 전기」, 「진혼가」, 「묘비명」, 「고향」, 「저녁길」, 「물오리」,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생각의 사이」, 「인왕산」, 「이대二代」, 「태양력에 관한 견해」, 「나의 자식들에게」, 「사랑니」, 「나무처럼 젊은이들도」, 「젊은 손수운전자에게」, 「봄길」, 「감나무 바라보기」, 「하얀 비둘기」, 「나뭇잎 하나」, 「자라는 나무」, 「느티나무 지붕」, 「새 기르기」, 「아니리8」, 「노루목 밭터」, 「형이 없는 시대」, 「어느 선제후의 동상」, 「바닥」, 「화초의 가족」, 「세검정길」, 「열대조」, 「중얼중얼」, 「대성당」, 「석근이」, 「탄곡리에서」, 「바지만 입고」, 「동해로 가는 길」, 「길을 물으면」, 「시름의 도시」, 「새밥」, 「끈」, 「주차장의 밤」, 「강북행」, 「높아지는 설악산」, 「오래된 공원」, 「효자 손」, 「바다의 통곡」, 「한식행寒食行」… 등의 계열체 텍스트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장시와 단시의 축을 오가면서 그의 시를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구성법은 구성 자체가 형성하는 큰 울림의, 내적 문법에 의한 구조를 이룬다. 그리고 대립을 형성하는 기본 축은 흔히 시간과 관여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시간, 그것이 주는 기준 하에 그들 대립은 선명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또한, 긍정 ,부정의 가치 기준이 자주 보이기도 한다. 이들. 대립항은 전경화foregrounding 또는 배경이 되면서 서로를 환하게 조명한다.

 


3. 병렬법parallelism과 구성


김광규 시 텍스트의 또 하나의 대표적 구성법은 병렬에 의한 이미지 생산과 그 중첩이다. 이는 그의 시 구성법의 중심이 된다. 병렬이 만들어 내는 시적 효과는 의미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병렬 구조의 텍스트, 「미끄럼」을 읽도록 하겠다.

 

달동네 놀이터에서 코흘리개 꼬마들
미끄럼 타기 바쁘다
미끄럼틀 계단을 종종종 올라가
쭈르륵 미끄러져 내려온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바지 엉덩이가 해지도록

미끄럼 탄다 너희들
왜 자꾸만 미끄러져 내려오느냐
아무도 묻지 않는다

머나먼 알프스 높고 높은
마터호른 근처까지 올라와서
눈부시게 하얀 방하의 벌판
거침없이 미끄러져 내려간다
온 세상 곳곳에서 몰려든 스키어들
개미보다도 훨씬 작아 보이는
형형색색 장난꾸러기들
솟아오른 아버지의 드넓은 가슴팍에서
흐르는 어머니의 부드러운 겨드랑이에서
가파른 눈언덕 아래로 겁도 없이
미끄럼 탄다 당신들
왜 자꾸만 미끄러져 내려가는 거요
아무도 묻지 않는다

- 「미끄럼」 전문

 

「미끄럼」에는 표층 구조상 두 개의 병렬이 있다. 그러나 수신자의 마음에 들려오는 기호들의 세미오시스 과정에서 보면 겹겹의 병렬이 1연, 2연 각각에 들어 있다. 의미 구조 안에서, 무한대로 이어가는 병렬이 넘쳐나고 있다.

이는,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는 듯하다. 두 개의 연 끝에 반복되는, 상동적isotopy 의미의 “왜 자꾸만 미끄러져 내려오느냐”/ 아무도 묻지 않는다”/ “왜 자꾸만 미끄러져 내려가는 거요/ 아무도 묻지 않는다”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장면과 장면 사이에 끝없이 나오는 언술, “아 참, 고도를 기다려야지”와 상동적 코드로 읽힌다.
그가 쓴 『아니리』 연작에서 스스로의 텍스트에 대한 생각이 내비치는, (일상의 모든 장면과 장면을 텍스트의 내면으로 끌고 들어와 시 텍스트로 만드는 그의 텍스트 생산법에서 형성된) 그의 시 텍스트들 그 자체들일 수도 있다. 이는, 발신자sender와 수신자receiver의 해체적 순간 속에서 다시 쓰게 하는, 수신자의 자유를 열어 놓는 병렬의 텍스트다. 김광규 시에서 병렬법은 거의 모든 텍스트의 구성을 이루는 근간이 되고 있다.
이 같은 구성법의 범주가 넓어지고 코드 모으기의 크기가 확장되면, 텍스트의 세미오시스 과정에서 의미 생산의 범주가 극대화된다. 더러는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텍스트로 전환되기도 한다. 의미의 통일성을 넘어 파편화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김광규 시인의 텍스트들에서는 이 같은 현상은 보이지 않는다.

 


4. 풍경과 구성


다음은, 김광규 시 텍스트 구성의 또 다른 전략, 풍경을 분석해 보도록 하겠다. 이를 위해, 앞의 논의에서 인용한 「미끄럼」을 다시 보도록 하겠다. 이 텍스트는 풍경을 묘사하는 텍스트다. 김광규의 시 텍스트에서, 풍경은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니고 행동의 주체이며 일어나는 일과 움직임의 원동력 역할을 한다. 풍경들은 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면서 깊이 있는 주제를 힘 있게 드러내 준다. 말하지 않는 말의 테마가 울려 퍼지게 한다. 이같은 풍경 묘사는 김광규 시 텍스트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또 하나의 중요 구성법이다.
「미끄럼」 1연의 “코흘리개 꼬마들”과 2연의 “개미보다도 훨씬 작아 보이는 형형색색 장난꾸러기”는 동일 의미를 생산하는 기표들이다. 그리고 2연의 개미보다도 훨씬 작아 보이는 형형색색의 장난꾸러기들은 인간이 아무리 커도, 아무리 늙어도, 우주적 공간 안에서는 개미보다도 작은 존재임을 나타내는 언술이다. 마터호른 산봉우리는 “형형색색 장난꾸러기” 스키어들의 아버지 같고 능선은 그들의 어머니 같다. 그들은 모두 자연 앞에선 너무나 어린 인간, 한 아이들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거대한 자연의 품 안에 사는 인간의 영원한 시간 속에서의, 설 자리 없음, 머물 곳 없음의 끝없는 미끄러짐을 읽게 하는 텍스트다. 그리고 수신자에 부여되는, 읽기와 논리의 자유 안에서, 끝없이 다시 쓰기하게 하는 읽기의 미끄러짐이 무한대로 흘러가게 한다. 롤랑 바르트가 말하는 “텍스트의 즐거움”이 산출 되게 한다.
이어서 「홍제내2길」을 보도록 하겠다

 

이름이 새로 바뀐 골목길
홍제내2길의 이른 아침
이 집 저 집에서 꼬마들이 튀어나온다
등에 멘 책가방 탈싹탈싹 좌우로 흔들면서
두 팔 활짝 벌리고 초등학생들
서둘러 학교로 달려간다
골목길 모퉁이를 돌아
훤하게 트인 한길로 사라진다
두이어 우체부가 지나간 소식 전하고
노인들 드문드문 경로당으로 모여들고
등산복 걸친 중년 남자가
커다란 셰퍼드를 데리고 간다
길가에 삐뚤빼뚤 세워놓은 자동차들
먼지를 쓴 채 하루 종일
그 자리에 서 있다 충되근 하는
젊은이들 별로 없고
양파와 햇감자 피는 행상들의 확성기 소리
유아원 미니버스 차량이 가끔 지나갈 뿐
비어 있어 아까운 한낮 기울 무렵
오후의 골목길에서
꼬마들이 다시 나타난다
축처진 책가방 짊어지고
맥 빠진 걸음걸이로
콜라 깡통을 발로 걷어차면서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걸어언다 하루사이에

조금 길어진 머리카락 나풀거리며
아침에 나타났던 골목길 모퉁이
전신주 곁으로 사라진다
홍제내2길에서 오른쪽으로 꼬부라져
집으로 가는 거겠지 어제저녁으로
되돌아 가는 것은 아니겠지

- 「홍제내2길」 전문

 

위의 텍스트는 연 구분이 없다. 이는 끝없이 반복되는 일상이, 텍스트 속에서 텍스트를 넘어 반복되게 할 수 있는 효과를 발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장면 같은 일상의 반복이 그대로 찍혀 있다. 일상의 풍경 말고는 특별날 것도 없는 화면이 지나가고 있다.
장면과 장면 사이에 끼어든 “아니리” 같은, “집으로 가는 거겠지 어제저녁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니겠지”가 없다면 그냥의 풍경이다. 거대한 풍경의 덩치가 텍스트의 공간을 꽉 메우고 있다. 이어서, 무심한 듯, 방백처럼 툭 던지고 가는 화자의 언술로 엔딩된다. 이에 나타나고 있는 풍경들은 텍스트 구성을 위한 거대한 전략이다. 그러므로 그 풍경에다 다만, 무심한, 지나가며, 한 마디 하는 듯한, 방백 한 마디만 던지면 완성이다.
맨 끝부분 3행에서 들려오는 발신자의 언술에서 수신자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풍경으로 드러난 집이라는 공간과 어제저녁이라는 시간이, 즉 시간과 공간이 해체되는 케이오스 현상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일상이라 말하는 그 모든 것은 근거리의 것이면서 먼 거리로 밀려나고 우리가 무엇이라고 믿는 그 모든 것에 물음하는 사유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김광규 시 텍스트에서 만나는 수많은 일상의 풍경들은 텍스트 안에서 이처럼 상상의 한계를 넘는 직능을 가진다.
다음은, 「보리수가 갑자기」를 보도록 하겠다.

 

바람 한 점 없이
무더운 한낮

대웅전 앞뜰에서 삼백 년은 살아온 나무
엄청나게 큰 보리수가 갑자기
움찔한다

까치 한 마리가 날아들어
어디를 건드린 듯
하기야 급소가 없다면
벗어나야 할 삶도 없겠지

- 「보리수가 갑자기」 전문

 

위의 텍스트도 앞의 「홍제내2길」과 동일 구조로 읽힌다. 주제나 구성상 압도적 역할을 하는, 보리수 풍경 + 맨 끝 두 행으로 완성되는 텍스트다.
이어서 「건널목 우회전」을 읽도록 하겠다.

 

땅거미 내릴 무렵
건널목에서 우회전하다가
길 한가운데 움직이는 물체가 보여
황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너덧 살 난 꼬마가 거기 있었다
급정거에 아랑곳없이
스키니 청바지에 야구 캡을 쓴 엄마가
스마트폰을 환하게 들여다보며
뒤따라오고 있었다

- 「건널목 우회전」 전문

 

「건널목 우회전」은 화자가 끼어든, 극적 갈등의 풍경이 제시되고 있다. 오픈 텍스트다. 이는 수신자 각자가 닫아야 한다.
이 같은 풍경에 의한 구성법은, 「4월의 가로수」, 「작은 꽃들」, 「대웅전 뒤쪽」, 「봄놀이」, 「느티나무 지붕」, 「노동절」, 「새 기르기」, 「까치의고향」, 「미끄럼」, 「열대조」, 「대성당」, 「동해로 가는 길」, 「새밥」, 「빨래 널린 집」, 「해변의 공항」…
등의 계열체 텍스트들에서 만날 수 있다.
이상에서 분석한, 김광규 시인의 시 구성법은 텍스트의 요구에 따라, 단독 또는 다중의 겹침으로 섞이며 텍스트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5. 맺음말


김광규 시인의 시 텍스트 구성, 시 쓰기의 전략을 분석해 보았다. 이항대립, 병렬, 풍경에 의한 구성이 그 핵심 전략이다. 김광규 시인의 시는 직설적 서술의 시다. 생활어들로 일상의 장면들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읽고도 못 읽은 더 많은 부분이 남아 독자의 능동적 읽기를 기다리고 있다. 엔트로피가 많은 시 텍스트다. 읽기와 쓰기의 경계를 해체하는 경계 넘나들기의 독자를 기대하는 텍스트다. 그리고 롤랑바르트적, 텍스트의 즐거움이 유발된다. 그의 시 텍스트는 이 같은 전략으로 균형 잡힌 구조, 등가적 형태의 효과적 누적, 그 상호작용을 만든다.

 

 

 

 

동시영 | 계간 『다층』 등단. 한양대학교 국어국문과(박사), 독일레겐스부르크대학교 인문학부 수학, 한국관광대학교, 중국길림재경대학교 교수 역임. 연구서 『현대시의 기호학』 『노천명시와 기호학』 『한국문학과 기호학』 등. 시집 『일상의 아리아』 외 일곱 권, 산문집 『문학에서 여행을 만나다』 등.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동국문학상 시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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