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플래시가 터진 필름 사진 속에서
우리는 옛날 사람 같다
별 기대 없이 나쁜 날씨를 산다
악몽을 향해 창을 연다
긴 벽에 난 작은 창은
위급상황에 깨고 나갈 수 없는 창이고
너른 풍경을 보여주지도 않는
등에 난 기억할 수 없는 점 같은 창
올봄 그 창은 메워졌고
우리가 너무 좋아했던 것은
우리가 외로웠기 때문일 것이다
입구에 두고 온 사람을 찾으려
미술관을 반대로 빠져나가고 있다
키치와 미니멀을 지나
리얼리즘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차가운 눈사람도
그림 속에서는 부드러운 털 짐승 같다
아직 전시가 시작되지 않은 미술관에
발자국 하나
유리문에 비친 광장의 시계탑에 비친
고급 부티크 상점의 종업원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곧 금지되었다
* 이 작품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0년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선정 작가의 작품입니다.
주민현 | 2017년 한국경제신문 등단. 시집 『킬트, 그리고 퀼트』. 창작동인 <켬>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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