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가 자란다
들판에 이빨이 돋아난다
자라는 것들이 태양을 삼키고 무쇠처럼 강해지는 계절,
늘어진 개 혓바닥 사이 송곳니가 옥수수밭 밖으로 걸어 나오는 안데스산맥의 바람을 와자작 씹는다
어미의 젖꼭지를 질끈 무는 아이는 이제 어떤 씨름판에서도 지지 않을 것이다
높은 곳을 향해 함성처럼 빠진 이를 던지고 구멍 난 소원을 빌어본다
부러지지 않는 희망을 달라고,
세상에 부러지지 않는 희망이 있을까
들판에 무성하게 희망이 자라고 기차가 계속해서 빈곤을 메아리로 던져놓는 여름,
제물 대신 이를 던져주고 이름을 지키며 살았으니, 옥수수수염이 다 새도록 청빈함이 재산이 된
초로의 노인이 옥수수를 수확한다
자신이 던진 함정에서 와르르 이빨들이 쏟아진다
조미희 | 2015년『시인수첩』등단. 시집 『자칭 씨의 오지 입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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