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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당/2021년 여름호

[계간 문파문학 2021 여름호 시마당] 홍계숙-그 거리의 히말라야시다

그 거리의 히말라야시다

 


낯익은 집들이 낯선 나무들의 곁으로 배치된
도시는 이 거리로 인해 삼척이다


가로수가 펼쳐놓은 도로 위로 자동차가 굴러가고 낮과 밤이 굴러
가고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태엽이 풀리는 거리, 이 거리 바깥에는 아
파트를 심고 날마다 물을 주어 도시의 키가 나무를 훌쩍 넘었다


직립의 체위를 바꾸는 그림자,


스치는 불빛에 가로수는 도열의 순서를 교체한다 그림자를 바닥
에 눕히고 체스처럼 한 나무가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면 다른 나무
는 뒤로, 뒤로, 후퇴하는 밤의 놀이로


거웃도 턱수염도 검어진 나무의 방언이 익어가고
4차선 분량의 밤하늘에 달빛과 자동차 불빛이 교차한다


불어오는 바람은 무거운 삶을 지고 산맥을 오르던 셰르파들,
고산지대를 누비던 히말라야인이 이곳에 정착했을까


사철 초록 어둠을 껴입은 히말라야시다, 벗어나려던 몸부림이 나
무가 되어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오비삼척鼻三尺이다


폭설을 건너온 검푸른 머리채, 물살의 발원으로 거슬러 오르던
먼 히말라야를 기억하는 나무들
나무 그늘 속에는 아버지의 빛나던 겨울이 가파른 호흡으로 길을
내고 있다

 

잘려 나간 가지로 펼쳐 보이는 상형문자
그 암호를 해독한 걸까


나무 둥치 캄캄한 물살을 가르고 별똥별 꼬리가 서쪽으로 흘렀다

 

 

 

 

홍계숙 | 2017년 『시와 반시』 등단. 시집 『모과의 건축학』 『피스타치오』 『다정한 간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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