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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당/2021년 여름호

[계간 문파문학 2021 여름호 시마당] 노혜진-지금의 우정

지금의 우정

 


나는 이층에 산다. 밤에 잡곡빵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일층 입구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보았다. 못 보던 얼굴이었다. 나의 창문 아래로 빵을 던진다면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질 것이었다. 토스트기를 통과하지 않은 빵을 허기를 달랠 수 있는 속도로 먹으며, 그를 지나치던 순간을 떠올렸다. 남자는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이 건물 앞에서라면 다들 서 있었지만 그는 계단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기다리는 것 같았다. 무리를 지어 다니거나 뭉쳐 있는 사람들의 거리에서 건물의 둘레를 자신만으로 채우고 있었다. 두 칸이 전부인 계단에 잠시 살고 있는 것일까.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자세와 달랐다. 오래도록 머무르려는 것 같았다.
다음 날에는 남자의 등을 보았다. 쭈그리고 앉아 부스럭거리고 있었는데, 커다란 화분 두 개에 가려 누구인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밤의 건물 일층에서 재활용 쓰레기들을 촛불처럼 자신 주위로 둘러 세워둘 만한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공동 현관의 비밀번호를 누른 후 화분을 향해 몸을 돌려 기울인 채 누구인지 확인하는 동안, 그도 쭈그린 몸을 뒤로 돌리고 고개를 들어 누구인지 확인했다. 동시에 서로의 기척을 느낀 것, 밤 11시에 눈이 마주친 것이었다. 밤에 이루어졌던 우정들에 대해 생각했다. “오랜만이네요?” 내가 말했고, 자동문이 바로 열렸기 때문에 긴 대답이라면 들을 수 없었다. 빨려 들어가듯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에 짧은 대답조차 듣지 못했다. 헤아려 보니 그를 사 개월 만에 보는 것이었다.
이런 관계가 요즘 내 우정의 전부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혼자였고, 같은 번호의 버스가 앞에서 달리고 있었다. 당분간 아무도 타지 않을 것이었다. 버스와 버스가 멀어질수록 멈추는 정류장이 늘어날수록 승객이 탑승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었다. 그러나 깊은 밤이었고, 두 명의 기사는 밤의 속도에 맞게 운전을 했다. 도로의 모든 버스가 직육면의 불빛 같았다. ‘지금의 우정은 이것뿐이예요 이 불빛뿐입니다’


불편한 것은 없습니까
불편한 것이 있습니다
대답했다
남자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며칠 전 계단의 남자는 그의 손주라고 했다. 등의 남자는 그의 아들이었다. 우리는 두 개의 촛불처럼 마주보고 서서, 태풍으로 인한 돌풍이 미리 부는 동안 그러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기 시작할 때까지 이야기했다. 잠시였다. 그가 아들이 있는 고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아버지가 없는 나는 이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노혜진 | 201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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