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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당/202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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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문파문학 2021 가을호 시마당] 박주택-다시 두 사람 다시 두 사람 -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꽃 피는 밤 남산 가까이 구름이 쉬어 가고 타워는 빛난다 핏기없는 여자 막바지에 다다라 잠수교를 걷는다 손이 닿기를 기다리는 알은 해쓱하다 귀신이 차기 시작하는 저녁 남자는 깨진 달 아래를 걷는다 깨진 달 별을 낳을 수 없는 밤 여자는 이태원 쪽으로 남자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목이 굳은 길을 걷는다 꽃 지는 밤 남자는 걷는다 별을 낳는 밤을 여자는 걷는다 손이 닿는 알 곁을 여자는 이사 간 집으로 들어가고 남자는 이사 온 집으로 들어간다 여자는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남자는 죽는 게 죽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남자는 빌려준 존재처럼 개를 기르고 여자는 빌려온 존재처럼 고양이를 기른다 남자는 여자 속을 걸어 남자 속으로 여..
[계간 문파문학 2021 가을호 시마당] 유자효-손자의 사유재산 손자의 사유재산 일곱 살배기 손자에게 사유재산이 생겼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가 준 세뱃돈이나 용돈을 상자에 담아 안방 벽장 안에 넣어두고 가끔 꺼내 본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봤더니 나중에 결혼하면 우리 집과 여자애 집 사이에 자기 집을 사기 위해서란다 용돈을 알뜰히 모으는 일곱 살배기 손자 오늘도 벽장을 열고 상자를 꺼내 제가 살 집값을 셈해보고 있다 유자효 | 1968년 신아일보(시), 불교신문(시조)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신라행』 시선집 『세한도』 시집해설서 『잠들지 못한 밤에 시를 읽었습니다』. 공초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수상.
[계간 문파문학 2021 가을호 시마당] 신달자-어이! 달 어이! 달 어떻게 여길 알았니? 북촌에서 수서에서 함께 손잡고 걸었던 시절 지나고 소식 없이 여기 경기도 심곡동으로 숨었는데 어찌 알고 깊은 골 산그늘로 찾아오다니… 아무개 남자보다 네가 더 세심하구나 눈웃음 슬쩍 옆구리에 찔러 넣던 신사보다 네가 더 치밀하구나 늦은 밤 환한 얼굴로 이 인능산 발밑을 찾아오다니… 하긴 북촌골목길에서 우리 속을 털었지 누구에게도 닫았던 마음을 열었었지 내 등을 문지르며 달래던 벗이여 오늘은 잠시라도 하늘 터를 벗어나 내 식탁에서 아껴둔 와인 한 잔 나누게 가장 아끼던 안주를 아낌없이 내놓겠네 마음 꽃 한 다발로 빈 의자를 채워주길 바라네 어이! 달! 신달자 | 1972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봉헌문자』 『모순의 방』 『아버지의 빛』 등. 수필집 『그대에게 줄 말은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