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마당/2020년 여름호

[계간 문파문학 2020 여름호 시마당] 이정훈 - 고래는 한마디 하려 했을 뿐인데

고래는 한마디 하려 했을 뿐인데

 

 

 

왜 이 집엔 저녁마다 배가 들어오는가

 

럼주라도 한잔 하면서 마른 정어리 꼬리를 씹어가면서

통 구르는 소리 쇠사슬 끄는 소리

수면을 가로지르는 뱃머리에 대하여

 

작살수들은 말하리

선창의 오크통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

 

항해사들은 말하리

우리도 밤마다 천정을 울리는

외다리 고래 뼈의 유령에게 시달린다네

 

돛대에 못박힌 금화 한 닢은 굴러가지 못하고

모든 오해와 파국의 뻔뻔한 엔딩

하품 끝에 흘러내린 눈물 속으로 작살은 날아간다

 

붕대와 피의 머리칼을 휘날리며 세이렌이 달려오고

크라켄의 촉수가 벽면을 휘감을 때

 

보라,

 

오늘도 수면 아래 몸을 세워 잠드는 3단지 향고래 떼

관을 타고 떠돌아야 하는 우리를

 

형편없는 배당을 쥐어 주며 바다로 내몬 업주는 어디에 있는

 

 

 

 

 

이정훈 |201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쏘가리, 호랑이』.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