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는 한마디 하려 했을 뿐인데
왜 이 집엔 저녁마다 배가 들어오는가
럼주라도 한잔 하면서 마른 정어리 꼬리를 씹어가면서
통 구르는 소리 쇠사슬 끄는 소리
수면을 가로지르는 뱃머리에 대하여
작살수들은 말하리
선창의 오크통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
항해사들은 말하리
우리도 밤마다 천정을 울리는
외다리 고래 뼈의 유령에게 시달린다네
돛대에 못박힌 금화 한 닢은 굴러가지 못하고
모든 오해와 파국의 뻔뻔한 엔딩
하품 끝에 흘러내린 눈물 속으로 작살은 날아간다
붕대와 피의 머리칼을 휘날리며 세이렌이 달려오고
크라켄의 촉수가 벽면을 휘감을 때
보라,
오늘도 수면 아래 몸을 세워 잠드는 3단지 향고래 떼
관을 타고 떠돌아야 하는 우리를
형편없는 배당을 쥐어 주며 바다로 내몬 업주는 어디에 있는
이정훈 |201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쏘가리,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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