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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당/2020년 여름호

[계간 문파문학 2020 여름호 시마당] 문영하 - 금목서 그늘에서 백일몽을 꾸다

금목서 그늘에서 백일몽을 꾸다

 

 

나무 한 그루 빈 집을 지킨다

 

햇살 한 겹 내려와 앉았다 가고 저녁이 하품하며 몸을

뉘었다 간다

 

전혀 닿을 수 없는 당신

나무속에 살아

뿌리와 줄기 쉼 없이 오르내리며 꽃을 실어 나르는 것일까

 

향기는 기억 속에 끼워 둔 갈피 같아서 아련한 기억들이

백일몽으로 일어선다

 

시월 한낮, 뒤란이 수런거린다

나무가 제 겨드랑이에 송송 황금알을 붙이고 있다

 

떠날 길이 급한 벌 나비, 등황색 꽃의 몸을 바쁘게 드나들고

향기는 담을 넘어 하늘로 길을 낸다

 

향이 만 리를 간다며 당신은 이 나무를 심었다

 

향기는 북천에 가 닿고 시간의 바깥에 서 계신 당신이

말갛게 웃는다

 

 

*물푸레나뭇과에 속하는 상록수, 꽃은 향수 샤넬 N5의 주원료.

 

 

 

 

 

문영하|2015년『월간문학』등단. 시집『청동거울』.『미네르바』시예술아카데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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