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목서 그늘에서 백일몽을 꾸다
나무 한 그루 빈 집을 지킨다
햇살 한 겹 내려와 앉았다 가고 저녁이 하품하며 몸을
뉘었다 간다
전혀 닿을 수 없는 당신
나무속에 살아
뿌리와 줄기 쉼 없이 오르내리며 꽃을 실어 나르는 것일까
향기는 기억 속에 끼워 둔 갈피 같아서 아련한 기억들이
백일몽으로 일어선다
시월 한낮, 뒤란이 수런거린다
나무가 제 겨드랑이에 송송 황금알을 붙이고 있다
떠날 길이 급한 벌 나비, 등황색 꽃의 몸을 바쁘게 드나들고
향기는 담을 넘어 하늘로 길을 낸다
향이 만 리를 간다며 당신은 이 나무를 심었다
향기는 북천에 가 닿고 시간의 바깥에 서 계신 당신이
말갛게 웃는다
*물푸레나뭇과에 속하는 상록수, 꽃은 향수 샤넬 N5의 주원료.
문영하|2015년『월간문학』등단. 시집『청동거울』.『미네르바』시예술아카데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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