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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마당/2020년 가을호

[계간 문파문학 2020 가을호 수필마당] 손경호 - 진주반지

진주 반지

 

 

결혼 때 아내에게 준 선물은 수정(水晶) 반지였다. 얼마 안 되어 그 반지에서 알이 빠져나가 잃어버리고 낙담하고 있을 때, 나중에 진주 반지를 다시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진주가 보석 중에 여왕 대접을 받는 아주 귀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진주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미려한 외관이나 희귀성 때문일 것이다. 무기질 탄소의 다이아몬드도 귀하기는 하지만 유기화합물인 탄산칼슘의 진주와는 전혀 다르다. 산 사람이 살아 있는 원소의 보석을 만나는 궁합은 찰떡궁합일 거다. 궁합이 잘 맞는 부부여야 살아가면서 사랑의 깨가 쏟아진다고 한다.

모래밭의 조개 안에 모래알이 들어가면 조갯살이 이물질에 반응하며 자기 몸을 방어하려고 체액을 분비하여 에워싼다. 모래알을 바깥으로 내치지는 못하고 긴긴 세월 몸 안에 품은 채 끊임없이 체액을 뿜어내 동그랗게 축적된 결정체가 진주다. 보드라운 살 속에 거친 모래가 박혔으니 진주를 키우며 한평생 얼마나 아파했을까. 사람들은 조개의 그 병마 덩어리를 보물이라며 혹한다.

동물이 몸 안에 생긴 병화에 반응하여 만들어지는 것 중에는 우황이라는 것도 있다. 소의 쓸개에 생긴 병화의 덩어리이다. 우황을 품은 송아지는 고통으로 시름시름 왕성한 생장을 못 한다. 알듯 모르듯 긴 세월 응어리로 자란 우황은 진귀한 약재로 쓰인다. 사람들은 귀하게 보이기 위해 조개에서 진주를 빼앗고, 장수를 위해 소에서 우황을 취한다. 진주를 그냥 여왕으로만 칭송하고 우황을 그냥 약재로만 여기기보다 그 속에 쌓여있는 고통과 인내의 흔적을 알면 진귀함은 한층 다를 것이다.

매미의 일생도 애잔하다. 나무껍질 속에 버려진 알에서 나온 유충이 굴러 떨어져 땅속으로 들어가면 다섯 번의 허물을 벗고 변신하는 굼벵이 기간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성충이 된다. 그 여정은 자그마치 칠 년에서 십칠 년까지나 걸리는 기나긴 여정이다. 고난의 여정에서 천적에게 먹히거나 병들어 죽고 백(百)에 둘 정도만 성충 매미의 자리에 오른다. 오직 불굴의 끈기만으로 버텨야 하는 여정이다. 나뭇가지에 엎드려 천재일우의 성취를 노래하는 매미가 갸륵하고 우뚝해 보인다. 그러나 그 환희의 성충기간이 겨우 열흘 남짓뿐이니 어찌하랴. 쥐꼬리 영광을 위해 십칠 년 세월의 장도에 나섰던 매미에게는 찬사에 더하여 애틋함이 있다.

고난 없이 저절로 굴러오는 광영은 없다. 안락은 긴 고통을 먹고 끄트머리에서만 기다린다. 고난을 먹고 자란 진주가 대견하고 십칠 년의 긴 장도에 나섰던 매미의 환희도 짧은 만큼 더 당당해도 되겠다. 영광의 크기가 고통의 길이에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고의 터널이 어둡더라도 화려한 끄트머리가 기다려 주는 인과응보는 그래서 보배다. 평생을 같이해온 여인에게 미뤄온 가락지 약속을 실행하려 한다. 이미 조개나 매미의 삶을 살아온 여인이 지각 약속을 반겨 줄지는 모르겠다.

 

 

 

 

 

손경호 | 1995년 『월간 한국시』 등단. 수상록 『동초의 고백』 수필집 『사랑할 줄 모르는 남자』등. 중봉조헌문학상 수상. 문파문학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계간문예작가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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