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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마당/2021년 가을호

[계간 문파문학 2021 가을호 수필마당] 김민정-천국의 계단

천국의 계단

 

 

코로나의 기나긴 터널은 새봄을 보내고 부드럽게 살갗을 애무하는 초여름의 기분 좋은 설렘도 없이 조심스럽게 지나는 시간이 아쉽기만 하다. 1차 백신 예방 접종을 하고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안면도 해안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움을 찾아 떠나 온 곳, 하얀 파도가 하얗게 웃으며 달려든다. 광활한 물결을 바라보며 말 그대로 가만히 멍을 때린다. 해안을 따라 형성된 넓은 백사장에는 캠핑과 차박을 즐기는 사람들이 물멍을 만끽하고 있다.


카페 앞마당에는 50m 길이의 ‘천국의 계단’ 이 설치되어 있어 포토존을 이루었다. 계단 아래에 삼각대를 놓고 사진을 찍으면 마치 하늘로 이어진 계단과 같은 사진이 연출된다. 실사판으로 최고의 인생 샷을 건지려는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하나같이 선남선녀들이다. 문득 이십여 년 전에 방영했던 드라마가 스쳐 지나간다.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드라마의 명대사이자 이야기를 끌고 가는 메시지였다. 권상우의 “싸당은 도다오는 거야” 혀 짧은 소리에 최지우의 한 발 더해진 “콩주 오빠(송주 오빠)” 말을 흉내 내면서도 절절한 사랑 이야기는 젊은 나에게 사랑의 서시를 품게 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사랑이 존재하고 있다. 치열한 삶의 한가운데에서도 사랑이라는 연애 세포는 지워지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잠을 자다 깨어나 열렬한 사랑을 반복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그 사랑이 끝나면 연애 세포는 다시 잠들어 버린다. 사랑은 상한 고기를 먹고 배탈이 난 것처럼 배앓이를 하는 고통이 뒤따른다고 했다. 그렇다 해도 사람은 자신의 천국을 기꺼이 희생하면서도 어두운 지옥의 길을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랑을 찾아 헤매고 있는지 모른다.

 

그 영원한 사랑, 끝없는 사랑은 천국에나 있을 법한 사랑이지만 그 사랑을 찾아 지금도 천국의 문 앞에서 서성이는 모습이 때로는 어이없지만 죽는 날까지 그 기다림은 식지 않을 것 같다. 계단에는 나름대로 가치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누구에게는 볼거리와 즐거움을 주고, 누구에게는 경이와 환상을 심어 주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108번뇌 삶의 애환을 넘어서는 계단, 인생과 삶의 가치를 품어주는 계단이기도 하다.


나 역시 어느덧 청춘의 닻은 희미해지고, 날개를 접은 중년의 삶에 힘을 모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내가 믿는 천국의 계단을 한 걸음씩 오른다. 중년의 내게 천국의 계단은 어떤 곳일까, 한 계단 더 높은 곳에 서기 위해 직업을 선택하고 학벌을 쌓고 외모를 가꾸고 재산을 늘리려고 허우적거리며 루프탑을 향해 열정을 쏟아붓지 않았는지 물어볼 일이다. 오로지 눈에 보이는 외형을 사랑으로 착각하며 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온 것은 아닐는지, 해답은 어느 것 한 가지도 자유를 얻지 못했다.


이 나이 되어서 조금씩 알게 되는 천국을 향하는 계단은 나만의 낙원이 아닌 함께하는 곳에서 위로 받고 사랑의 향기를 음미하며 살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한다는 것』에서 “진짜 사랑을 멋지게 할 수만 있다면 그것 자체가 성공적인 삶, 가치 있는 삶”이라고 했다. 천국의 계단을 한 계단 두 계단 오른다. 빛은 물살을 따라 고즈넉한 매력이 빛나고 세월의 더께를 더한 바다는 움직임 없이 잔잔하다. 시원한 강바람은 선물처럼 다가와 온몸을 감싸 안고 햇살을 머금은 난관에서 온기가 전해진다. 파도는 밀려와 사람의 마음을 씻어주고 사람의 마음이 밀려가 바다를 씻는다.

 

 

 

 

김민정 | 2007년 『수필춘추』 2008년 『문학미디어』 등단. 수필집 『여백에 핀 꽃』 『다시, 봄』. 청주 여백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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