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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당/2020년 봄호

[계간 문파문학 2020 봄호 시마당] 문신-누군가 페달을 밟아대는 저녁

누군가 페달을 밟아대는 저녁

 

 

  하루쯤 휘청, 하고 그대로 주저앉아도 좋으련만, 누군가 묵묵하게 페달을 밟아대는 저녁이다 물기가 마르지 않아 심심한 목덜미를 기웃거리며 아내는 외출을 준비하고, 식탁 위에 놓인 수저 한 벌이 흐리다 이런 저녁이면 자주 흘려놓던 한숨도 부질없다

 

  부질이라……

 

  이 말에는 쇠에 불을 먹여야 단단해진다는 대장장이의 통찰과 노동의 역사가 있다는데, 아무런 생각 없이 또 일없이 맞이하는 저녁이야말로 부질과 먼 일이다 그럼에도 밥그릇을 비우고 흘린 밥알을 훔치고 수저를 씻어 수저통에 가지런하게 눕혀놓는다 이렇게 살아보니 사는 일만큼 허술한 짓이 또 있을까 싶다 캄캄해지면 불을 켜는 일이나 환한 불빛 아래 늦도록 꼼지락거리는 일이 하루를 살아가는 일 같아서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쉼 없이 하루의 페달을 밟을 것이고

  페달에 걸린 저녁이

  슬슬슬슬 감겼다가 슬슬슬슬 풀려나가기도 할 것인데

 

  언제 한 번은 크게 쓸려 가버릴 것만 같은 저녁처럼 아내의 외출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문신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물가죽 북」「곁을 주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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