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마당/2020년 봄호

[계간 문파문학 2020 봄호 시마당] 송미정-우물은 끝내 열지 않았다

우물은 끝내 열지 않았다

 

 

기억의 길마저 흐려서 서성거리는 내 앞에

유일한 중심은 뚜껑이 덮여있는 우물이었다

 

붉어진 마음이 가는 주소지를 늦도록 더듬고 있으면

저녁노을이 살포시 차렵이불로 펼쳐지던 뒷동산도

몸을 낮춰 마을로 내려왔다

 

버려진 것도 모르고 삭은 기둥으로 견디고 있는 폐가

그가 쌓아놓은 적막을 먼 길 가던 바람이 쓰다듬고 있었다

 

옛사람이 오거나 말거나 마을은 낮잠이 너무 길고

이제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길목마다 글썽이는 이름들 주워 담고

고아처럼 돌아서는 길 오래 묵은 슬픔을 출렁거리다

간신히 다스렸을 우물은 끝내 열지 않았다

 

 

 

 

송미정 |2002년 『문학시대』 시 등단. 2015년 『한국수필』 『수필과 비평』 수필 등단. 시집 「소소한 일」 외 4권, 수필집 「가끔은 나도 흔들리고 싶다」외 2권. 문파문학회 회원.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