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강에 손을 넣고
겨울을 버티기 위해선
알몸을 투명하게 얼려야 한다지
껍질을 단단히 세워야 속살을 견딜 수 있으니까
맹렬한 바람과 눈보라를 비껴서
안으로 깊숙이 흘러야 전부를 잃지 않으니까
마침내 무수히 작은 물의 혀들이
단단히 언 제 몸을 핥기 시작하지
가장자리부터 안쪽 깊숙이 온기로 닿는 바람결을 따라
온몸을 혀로 녹여내는 거야
가장 아름다운 소리의 여울들
한숨처럼 들고 나는 저 가난한 혀들의 헌신들
나의 언 손이 가까스로 강물에 닿는다
나의 삶 어느 구석에 저런 시린 헌신이 있었는가
흐르고 싶지 않아, 누구에게도 젖어 들고 싶지 않아
먼 길 에돌아 와서
내 깊은 곳까지 꽝꽝 얼어버린 단단한 강을 본다
봄은 어린 강을 껴안고
언 몸들을 하염없이 녹이는데
나의 봄은 어디 있는가,
시린 손에 묻은 물기 한 점의 봄이
정영주|199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아버지의 도시」「말향고래」「달에서 지구를 보듯」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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