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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마당/2020년 여름호

[계간 문파문학 2020 여름호 수필마당] 김상미 - 적당한 거리

 

적당한 거리

 

코로나가 가져다 준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쪽으로 밀어 놓은 책을 손에 들게 했다. 이따금 읽고 있는 소설의 주인공이 나 같다는 생각이 들어 빠져들었다. 이웃의 삶을 모방하는 소설가들은 충분치 않음을 동원해 거꾸로 자신의 고유한 영토를 늘려간다.

생활력이 강하고 이웃을 자주 깔보는 아낙은 내 어머니 같고 경쟁과 온정 속에서 반목과 친목을 되풀이 하는 사람들은 내 이웃들과 닮았다. 소설에 등장하는 케릭터들은 꾸준히 맥박 소리를 내며 사람답게 군다. 책을 펼친 내 쪽으로 욕망을 안고 절름거리며 다가온다. 허영이 허영을 알아보듯 어떤 악은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아는 체할 뻔하기도 했다. 그들의 절뚝거림은 불편이자 경쾌함으로 다가왔다. 그 엇박자 안에서 어떤 흠은 정겹고 어떤 선은 언짢아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이런 감정 나눔을 생활 속에서 얼마나 하고 사는가. 말 못할 고민이 있지만 외면당할까 두려워 마음을 쉽게 털어놓지 못하고 산다. 내가 별 것 아닌 일 가지고 호들갑을 떠는 건가? 하는 생각에 잘못 된 감정으로 치부하고 꽁꽁 숨겨둔다. 억압된 감정은 사라지지 않은 채 마음속에서 점점 불어난다. 결국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것으로 불편한 마음을 표출하게 마련이다.

현대인의 마음의 병인 분노조절장애는 무수한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꾹꾹 담아놓았다가 조율하지 못하는 것에서 온다. 가끔은 나도 분노조절장애를 느끼며 산다. 만약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이 있다면 대화를 통해 어떤 감정이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려보낼 수 있을 텐데. 대부분 사람들은 상대의 말을 듣기보다 비판이나 조언을 하기 바쁘다. 조언은 상대에게 섣부른 충고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상대의 말을 들을 때 어떤 판단도 하지 않고 그의 입장이 되어 듣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타인에 대한 관심은 그의 말에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 아닐까. 마음에 여유 공간이 있어야 충고에 대한 감사함도 느낄 수 있다.

코로나가 사회적 거리두기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하여 마음은 구름밥상을 차려 놓은 하늘만큼 청명해졌다. 모임과 문화시설을 폐쇄하니 나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시간과 애정을 단순한 것에 쏟으니 치열한 잡념들이 사라졌다. 내가 사는 세상과 진정한 만남을 하며 굳이 시스템 안에 들어가서 불량품처럼 모멸 받으며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앞선다.

오래 전 추억의 문을 열고 들어가 잃어버린 사람들 전화번호를 찾아 접속을 시도해보았다. 없는 번호라는 ARS 답변이 고독한 채로 되돌아 왔다. 전화 왕래가 끊어진 것은 내가 피한 것도 아니고 서로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선택하여 사느라 당당했던 시간이었다.

코로나가 물리적인 거리를 2M 유지하도록 하지만 마음의 거리는 훨씬 더 넓은 사이 띄우기를 하고 바라보면 어떨까. 인생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그 사실을 망각하고 인맥을 쌓아 삶을 채우려 하니 남들보다 뒤처질 것 같고 낙오될 것 같은 불안감에 군중을 찾아 헤매는 것 아닐까. 인생은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 같아 어떤 짐을 꾸려야할지 알 수가 없어서 자신에게 서툴다.

 

 

 

김상미 | 2002년 『현대수필』 등단. 구름카페문학상, 신라문학상, 산귀래문학상 수상. 수필집 『 유리새를 만나다』. 시집 『반사거울』 외 다수.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회원. 현대수필편집위원. 여성문학인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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