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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마당/2020년 여름호

[계간 문파문학 2020 여름호 수필마당] 강대진 - 명당

 

명당

 

 

개 짖는 소리 조급하게 들린다. 살기마저 서려 있다. “컹컹” “컹컹” ……. 앞산과 뒷산이 울리고, 집 옆 숲속에서 시끄럽게 울어대던 멧새 떼가 푸르르 날아오른다. 개 짖는 소리만 선명하다. 머리카락이 쭈뼛쭈뼛해진다. 등골이 서늘해지고 아랫도리에 힘이 빠진다. 귀를 쫑긋하여 소리 나는 쪽으로 간다. 축대의 난간이 끝나는 지점에서 개는 너구리를 앞에 두고 맹렬히 짖고 있다.

얼핏 보아도 스키(내가 기르는 개의 이름)의 사냥은 손자병법에 통달한 장수의 솜씨다. 앞마당과 뒷마당을 떠받치고 있는 3m 높이의 축대는 북쪽에서 동쪽으로 굽었다가 다시 남쪽과 서쪽으로 뻗어 오목한 지형을 만들고 있다. 유일하게 트인 서북쪽은 스키가 “컹컹” 짖으며 지키고 있다.

축대의 돌 위에는 미국담쟁이덩굴이 악마의 손처럼 잎을 너풀거린다. 그 아래 땅에는 쑥과 쇠무릎이 무성하고, 돌 사이사이에는 머위와 둥굴레와 쑥이 무성하다. 왼쪽에선 송엽국(松葉菊)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오래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드는 아름다운 환경이다.

출구가 막힌 너구리는 이미 삶을 포기한 듯하다. 몸길이는 1m 남짓 되어 보인다. 죽음을 직감해서인지 황토색 털은 부석부석하다. 뒷다리는 구부러진 채로 몸통에 깔려 있고 앞다리마저 힘을 잃었는지 남쪽 돌담에 비스듬히 기대고 있다. 겨우 고개만 들어 개가 있는 쪽으로 돌리고 있다. 끝이 새까맣고 뾰족한 주둥이는 힘없이 벌어졌는데 하얀 이빨 사이로 불그죽죽한 혀가 옆으로 축 늘어져 빼물고 있는 모습이다. 죽은 것 같아 자세히 보니 아직 눈동자가 움직이고 있다. 지리산을 누비며 사냥하던 용맹한 기세는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쌍꺼풀진 눈꺼풀 아래 탁구공 같은 눈동자는 컴퍼스로 그린 듯 둥글고 핏발이 서 있다. 땅거미가 짙어가자 파르스름한 빛이 나온다. 괴기한 모습인데도 공포감보다는 슬픔과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스키는 복싱 선수가 케이오 펀치를 날리기 위해 상대편의 주위를 흐리게 하는 잽을 날리듯, “컹컹” 짖으며 주둥이를 앞으로 내밀었다 뒤로 물러나는 동작을 연속으로 하고 있다. 온몸의 털이라는 털은 모조리 꼿꼿하게 세웠다. 고슴도치 같다.

스키는 꼬리를 막대처럼 꼿꼿이 세우더니, 앞다리를 가슴 쪽으로 오므리고 뒷다리에 힘을 준다. 힘껏 땅을 차서 1m 정도의 거리를 휙 날아 너구리의 목을 덥석 물었다. 단 한 번의 입질에 너구리는 축 늘어진다. 이 잔인한 광경은 어디선가 본 듯하다. 생과 사를 가르는 강자의 의기양양한 모습까지도. 사위는 적막하다.

백운산 서쪽 봉우리의 스카이라인이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수묵화를 그려내고 있다. 아름다운 환경, 아름다운 순간에 한 생명이 석양 속으로 사라진다. 너구리는 네 다리를 하늘로 향한 채 벌러덩 드러누워 있다. 털이 듬성듬성한 하얀 배에 두 줄로 늘어선 젖꼭지가 나의 망막에 한참 동안 머문다. 다시 새소리, 풀벌레 소리 들린다.

스키가 달려와 뒷다리를 구부리고 땅에 주저앉는다. 꼬리를 흔든다. 스키의 밝은 표정을 보며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허무하다.

 

 

 

 

 

강대진 | 하동출생 및 거주. 2011년 『한국수필』 등단. 한국수필가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올해의 수필작가상 수상(2016. 한국수필). 수필집 『섬진강의 물안개』(2018, 선우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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