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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마당/2021년 여름호

[계간 문파문학 2021 여름호 수필마당] 이경선-모냥 지키기

모냥 지키기

 

가끔 나이를 꼽다 보면 순식간에 숫자가 불어난 것처럼 화들짝 놀라곤 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건만 조심해야 할 부분도 보태지니 서글프다는 푸념이 마른 호흡 속에 배어 나온다. 어른 노릇 하는 것이 쉬운 게 아니라는 말처럼 체면, 위신 위해 감수해야 하는 부분도 발생하고 아랫사람에겐 표본을 보이며 행동에도 자제를 해야 잘 익은 어른이란 평가를 듣게 된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그동안의 정서나 사고가 하루아침에 어른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젊은 세대의 문화를 동경하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이제 막 시니어 대열에 진입하는 ‘어쩌다 어르신’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고 외양만 늙어버린 청춘이다. 하지만 그 속내를 보여줄 방도가 희박하니 우린 어쩔 수없이 연륜에 걸맞게 나이 값이란 걸 해야 한다. 요즘 흔히 말하는 ‘모냥’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그 은어를 떠올리면 적절하게 요약한 표현이라 듣는 즉시 행동에 반영하곤 한다. 어떤 상황에 인간의 보편적 심리를 감추고 군자처럼 행하라는 일침인지라 곧잘 분위기에 흔들리는 감정을 바로잡게 한다.


“이젠 눈치 안 보고 살 거야, 내 맘 쏠리는 대로 살 거야.” 라는 외침을 뱉곤 한다. 이 말을 들어야 하는 사람은 딱 한 사람, 파뿌리가 된 남편뿐이지만 남발하다보니 먹히지도 않고 실상 그리 살지도 못하는 걸 알기에 대꾸도 없다. 그래도 큰소리 한 번 터트리고 나면 어지러운 심경들이 가라앉기에 답답함을 삭일 수 있어 메아리 없는 단어들을 또 주워 담아 보관한다. 누구에겐 만만한 세상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에겐 버거운 세상일 수도 있다. 녹록지 않은 삶의 형태는 세월이 바뀌는 것처럼 그 시대 맞춤형 고통을 정확히 수반하고 있다. 우리가 자라던 시대와는 비교도 안 되는 풍요와 문화를 누리는 현재의 젊은이들이 부러울 때도 있지만 요즘 들어 그들에겐 또 그들만의 힘든 시간이 동반한다는 생각에 머물 때가 많다. 누구에게나 다방면으로 긴장하고 살아야 하는 삶인 것은 분명하다.


드물게 권위를 바닥에 내려놓고 행동하는 어른들도 있다. 가만히 앉아서 대접 받을 수도 있는 위치인데 막내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겸허한 자세지만 아직 우리 사회 인식엔 적응되어 있지 않아 낯설고 함께 있던 주변인들을 당황하게 한다. 찬사는 쏟아내지만 난 그게 잘 안되니 몸이 굼떠서인지 항상 한 박자가 느리다. 그런 사고방식이 서서히 정착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꾸 잊는 걸 보면 우리 사회에선 좀 더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젊은 세대이건 ‘모냥’을 감안해야 할 연배이건 나름의 체면은 유지해야 하는 과제라 할 수 있다. 모두의 얼굴이 다르듯 생각도 가치 기준점도 다르다.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 상황과 존재의 관록에 부합되는 적합한 행동이 쉽지 않고 그렇다고 안하무인으로 행할 수는 없지만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한결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계절이다. 술렁이는 햇살 따라 움직여 보는 수수한 ‘모냥’도 서로에게 말을 걸며 환호하는 근사한 그림이겠다.

 

 

 

 

이경선 | 2006년 『한국문인』 등단. 『한국수필』 이사, 국제PEN한국본부 회원, 경기한국수필 회장 역임, 수필집 『하얀 비』 『겹겹 기억속에』 『틈과 여백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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