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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마당/2021년 여름호

[계간 문파문학 2021 여름호 수필마당] 문육자-우이도의 바람

우이도의 바람

 

선상에서 기적처럼 만난 <우이도 민박>의 아주머니는 혀를 찼다. 식구들이 모두 목포에 살고 있으니 예약 손님이 없으면 목포에서 지내다 민박집엔 철새처럼 한 번씩 들르는 걸 알면서도 연락 없이 오다니…. 같은 배를 탔으니 망정이지 어쩔 뻔했느냐는 아주머니의 말에 바람이 꼬드겨 훌쩍 떠나왔다는 변명을 목젖으로 삼키며 웃기만 했다. 아주머니 얼굴에 반가움이 역력함을 놓치지는 않았다.


목포에서 하루에 한 번 뱃길로 4시간. 다도해 국립해상공원의 해역에 우이도는 자리 잡고 있다. 자동차는 허용되지 않고 마냥 흙길을 걸어야만 하는 곳. 섬시인 이생진 선생님을 따라 처음 발을 디딘 이후 우이도를 끊임없이 그리다 민박집 아주머니의 지청구를 들으면서까지 불쑥 찾아가곤 한다. 지난번 사흘을 계속해서 비에 젖은 채 창을 두들기던 파도 소리며 몽환의 세계로 나를 데리고 다니던 안개 내음. 파도와 안개는 정분난 남녀처럼 마음 맞추어 기어이 육지로 나가는 배를 붙들어 매어 나를 섬 안에 가두어 두기도 했다. 미묘한 적막은 편안함이었다.
무엇보다 나를 붙드는 것은 온몸을 휘감은 채 모래언덕을 사정없이 달려 내려오던 우이도의 바람이었다. 갠 하늘 아래 그들만의 세상인 듯 난해한 몸짓으로 기하학의 무늬를 새기며 내려오더니 잠시 어디선가 숨죽이며 있다가는 공룡보다 더 짙고 깊게 발자국을 남기며 되돌아 올라갔다. 되돌아 올라가는 바람의 그림자를 보느라 종일을 철퍼덕 앉아 있어도 지루하지 않던 시간이었다.


여태까지 내 인식의 저장고에 들어있는 바람의 의미는 광풍이라도 소멸하는 아름다움과 울음으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존재였다. 위로의 빛깔이었고 가끔은 침묵의 결이었다. 바람처럼 살다 이승을 떠난 아버지의 몸을 한 줌 재로 바람결에 묻었던 고등학교 2학년 갈래머리는 어머니도 그렇게 바람에 실어 보내드렸다. 허망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익히며 자지러지던 날 바람은 위안이었다.


그에 비해 여행길에서 만난 남프랑스의 바람은 로망이었다. 호텔 창문을 열면 올리브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뚝뚝 떨어지고 시폰 옷자락 같은 바람은 지중해를 품고 다가오기도 했다. 눈부신 옥색이었다.


우이도의 바람은 전혀 달랐다. 무작정 나를 불러 배에 태우는 힘은 모래언덕을 짓이기듯 허물었다가는 다시 돌려놓는 정직함이었다. 그것이 바로 바람의 실체라고 느끼게 했다. 파열음을 내며 내려와서는 갈기갈기 해체되었다가 회오리 되어 다시 올라가 낮추어지지 않는 모래언덕을 새롭게 만들었다. 바람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며 정상에 앉아 숨을 고르고 내리쬐는 햇살에 멱을 감았다. 다시 단장한 바람은 경건하게 햇살을 키질했다, 우이도의 바람은 그런 것이었다. 그 바람을 잊을 수 없어 ‘섬사랑 6호’에 자주 몸을 부릴 나를 영원히 막지 않으리라.

 

 

 

 

문육자 |2009년 『한국수필』 등단. 수필집 『여행, 영혼의 씻김굿』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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