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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마당/2021년 여름호

[계간 문파문학 2021 여름호 수필마당] 김진진-원시적 시간

원시적原始的 시간

 

빈센트 반 고흐나 앙리 마티스, 마르크 샤갈이 즐겨 사용한 ‘코발트 블루’는 진청색이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나 <밤의 카페 테라스> 마티스의 <푸른 누드>나 샤갈의 <두 얼굴의 신부>는 푸른색이 인상적이다. 신비함과 관대함으로 상징되는 이 색은 청결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차갑고 고독하며 성스럽고 아름다우나 때로는 도도하고 정열적인 느낌마저 발산한다. 1775년 루이 자크 서나드 등 과학자들의 협력으로 탄생된 안료다.


코발트는 약간 붉은빛이 감도는 강렬한 톤의 파란색 분말로 코발트라는 귀한 광석을 사용하여 만들어내는 화합물이다. 지금도 중요 생산지는 고대 페르시아로 불리던 이란이다.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는 코발트를 유액에 넣어 만든 푸른색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8세기 이후 중국으로 수입되어 청화백자 같은 고급도자기가 유럽의 명문가들에게 팔려나갔다. 따라서 당시에는 중요한 교역품목이었으나 10~19세기 서양 코발트 안료인 양청洋靑이 들어오면서 흔해졌다. 변색이 쉽지 않아 건물 등의 내외장재로도 많이 사용된다.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단단한 광물질이며 녹는점이 1495°C, 끓는점이 2927°C이다.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의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에서 채굴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코발트라는 이름은 어두운 광산에서 파랗게 빛나는 광석들이 독일 요정인 코볼트Kobold의 눈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졌다. 코볼트는 ‘아이’라는 뜻을 가진 정령으로 독일의 상상 속 난쟁이 요정이다. 집안사람들이 모두 잠들었을 때 마구간의 말을 돌보거나 접시를 닦아준다. 그 댓가로 한 컵의 우유를 요구하지만 보답이 없으면 그 집을 나가버린다고 한다. 광산천정에 붙어 돌을 떨어드리거나 폭발을 일삼아 광부들이 두려워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코발트는 채굴 과정에서 아동들의 노동력 착취로 인해 ‘분쟁광물’로 분류되기도 한다. 어린이들이 하루에 12시간 이상 맨손으로 일하고 고작 천 원을 받는다. 유니세프는 광산 노동에 동원되고 있는 아동의 수가 무려 4만 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최근 전기자동차 시대가 열리면서 배터리 주원료인 코발트 가격도 폭등하고 있다. 전 세계 매장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콩고의 정치 불안과 치안 불안정으로 문제가 심각해진 탓이다. 중국 업체들은 코발트 대신 리튬인산철(LFP) 2차 전지를 강조하고 있으며 배터리를 생산하는 다른 나라들도 가격이 싼 니켈로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일출 직전과 일몰 직후, 하늘이 진청으로 물드는 그때를 나는 가장 원시적原始的인 시간이라 부르곤 한다. 시작과 끝, 열림과 닫힘이 이루는 모호한 시간의 경계가 알 수 없는 혼돈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과 절망, 탄생과 죽음이 혼재된 카오스적 시간이기도 하고 때로는 태초의 비밀을 간직한 듯 신비롭고, 정적으로 흘러드는 길목처럼 고요하기도 하다. 숭고해져서 무릎을 꿇게 만드는 거룩한 시간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문명과 문화의 이름 아래 어두컴컴함 속에서 고통을 볼모로 잡힌 야만의 시간이기도 하다.

 

 

 

 

김진진 |2011년 『월간문학』 수필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원. 동서문학상, 대표에세이문학상, 경북일보 문학대전, 제16회 원종린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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