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마당/2020년 봄호

[계간 문파문학 2020 봄호 수필마당] 김숙경-겨울 광교산

겨울 광교산

 

  바람 소리가 파도 소리를 낸다. 텅 빈 나무 위에서 나는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다. 발목을 덮고 있는 낙엽과 잔설이 아직도 먼 봄을 기다리고 있는 듯싶다. 내가 사는 곳에 험하지 않으면서도 아늑하고 나지막한 산이 있다. 수원 시민이라면 한번쯤 손짓하는, 거부하지 못해 찾는 그런 산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광교산을 병풍 삼아 자리 잡은 우리 동네를 사람들은 축복 받은 일이라고들 한다. 공기처럼 가까이 존재하는 것에 감사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도 그저 그런 산으로만 기억했다. 그렇게 알려지지 않은 산으로만 알았는데 유명세를 치룬 듯 하루가 다르게 산을 찾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 뒤꼍에 자리 잡은 산처럼 여겨지는데도 마음먹지 않으면 산에 오르는 일은 쉽지가 않다. 남편과 큰마음을 먹고 오랜만에 둘만의 산행에 나섰다 .

  오후 2시가 너머 광교 저수지물이 하천을 타고 내려오는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분지처럼 나지막한 길, 바람은 차갑지만 햇볕은 따뜻했다. 우리처럼 늦게 오르는 건지 몇몇 등산복을 입고 배낭을 멘 사람들이 눈에 띈다. 걷기만 해도 운동이 될까 싶어서 부지런히 발걸음을 떼어본다. 남편의 보폭은 어찌나 큰지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는 내 모습이 누가 보면 우스워 보일 것만 같다. 거꾸리와 장다리꾼 같다. 좀 천천히 걸으라고 소리치는 내게 보폭을 맞추다가도 답답한지 성큼성큼 걷는다. 내 발걸음이 또 조급해진다.

  등산로 초입에 다다르니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이 산에서 내려오기도 하고 산을 향에 오르기도 한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다들 두툼하게 옷을 입고 모자에 목도리에 어느 한 곳도 추위가 파고들 것 같지 않은 모습들이다. 광교산은 완만한 경사여서 초보자도 쉽게 오르기에 무리가 없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 같다. 목적지를 형제봉까지 정해놓고 중도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각오를 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남편은 싱긋 웃는 모습으로 그렇게 오르기를 응원하는 듯하다.

   형제봉에 올랐다. 수원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수원 시내를 가장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아마도 형제봉밖에 없을 거라고 남편은 말한다. 바위에 메어놓은 줄을 타고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꼭 암벽등산가의 모습을 흉내 내는 것 같다. 웃음이 나왔다. 저들이 소리 내는 작은 공포와 현기증마저도 사랑스러워 졌다.

  하산하면서 바람을 피해 한 잔의 커피를 마시는 일은 따스하고 행복한 일이었다. 지나는 사람들에게도 차 한잔 권하는 남편의 모습은 산에서 보는 또 다른 일면이다. 쌩쌩 거리는 바람소리, 저 만치서 걷는 남편의 걸음걸이, 오르막 등산길에서 힘들지 말라며 부러진 나무를 다듬어 지팡이를 만들어 준 남편의 마음 씀씀이, 그 모든 소묘를 짧은 시간 안에 스케치하고 돌아왔다. 이제 그 밑그림들에 맑고 투명하게 색칠해지는 수채화 한 폭이 되길 바래본다. 새싹들이, 나무들이 수런거리는 봄이 오면 다시 찾아 와야겠다. 예쁘고 사랑스럽게 싹을 틔울 작고 여린 풀잎들, 키 작은 관목들, 풍성한 잎들을 매단 키 큰 나무들의 이름들을 기억해야 하니까. 집을 나서면 보여 지는 것들이 낯설지만 새삼스러운 세상이 된다. 가끔은 무리하듯 떠나 볼일이다.

 

 

 

김숙경 | 2007년 『한국문인』 등단. 수필집 『엄마의 바다』. 동남문학회 회장 역임,

제10회 동남문학상 수상.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