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고르기
일기예보 없는 소나기 퇴근길
비에 버무려진 땀, 흠뻑 젖은 남자
타조알처럼 단단히 설계한 보석 같은 서류
가슴에 품고 휘청휘청 뛴다
헐떡이던 구두 혓바닥
쩍 – 갈라졌다
마트에서 구입한 단 한 켤레, 허쉬파피 브랜드 지문
기적처럼 살아 희미하다
미처 마르지 못한 구두 발바닥
어제 흘린 생의 땀방울 올라와
마루 끝 이끼처럼 붙어있다
해를 거듭하며
세종청사에서 서울 국회를 오가는 동안
어긋나고 뒤틀린 보도블록에 차인 구두 콧등
움푹움푹 살점 떨어져 나갔다
휘청거리는 나라 세우느라
노후대책 완전할 수 없는 노부모 아들로 살아가느라
한 가정의 기둥으로 뿌리내리느라
맑고 투명한 남자,
늘 새벽 별 앞세웠다
허리 구부려 소파에 밀어 넣은 밤
헤아릴 수 없었다
3급 부이사관 승진 보도되던 날
국회 앞마당 나무 그늘 의자
홀로, 더욱 몸 낮춰 숨 고르기 하는데
한 세월 지구를 떠받치다
두 동강 난 구두 밑바닥, 두 눈에 박혀
우직하게 지나온 시간
그렁그렁 하늘 본다
순결한 청지기의 길 위로
진-한 초록 생(生)의 물결 일렁인다
김은자 |2019년 계간『문파』 등단. 시집 『반짇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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