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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당/2021년 봄호

[계간 문파문학 2021 봄호 시마당] 한여진 - 팔레스타인에서

 

   팔레스타인에서

 

 

 

   팔레스타인에서는 올리브로 반찬도 만들고 기름도 짜고 또 그 나무로는 묵주도 만든다고 한다 팔레스타인에 가야겠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했다 이유는 딱히 없다 운이 좋으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올리브나무를 볼 수도 있겠지 그 나무를 봐야하는 이유가 꼭 있는 건 아니야 그래도 누구든 자신보다 오래 산 나무를 보면 하고 싶은 말이 한두 마디쯤 생길 수 있고 올리브 비누로 손을 씻고 너를 만나러 갔는데 그래도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지 않기로 했다 아무래도 요즘 같은 때에는 조심해야지 요즘 같은 때라니, 이 장면 속에서 나는 너를 지우고 지금 우리가 마주 앉아있는 심야식당을 지우고 가짜 벚꽃 인테리어 소품을 지우고 풋콩과 생맥주를 지우고 마스크와 손소독제도 지우고 올리브 나무만 기억할래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산 올리브 나무에게 어쩌면 기억은 의미가 없을 거야 핸드폰에서 지도앱을 켠 다음 팔레스타인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찾아봐 비행기로 12시간 15분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도 팔레스타인에 가지 못할 것이다 만나지 못할 오래된 나무를 아무렇게나 상상해본다 푸른 앞치마를 두른 알바생이 하품을 하며 가게 안 텔레비전을 껐다 그래도 자꾸만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었고 우리는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한여진 | 2019년 『문학동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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