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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당/2020년 봄호

[계간 문파문학 2020 봄호 시마당] 이영춘-겨울새들의 편지

겨울새들의 편지

 

 

어느 시인은 아픈 동생의 몸이 겨울처럼 깊어진다는 소식이고
한 시대를 풍미하던 여배우는 자신의 딸도 몰라본다는 기사가
문풍지를 흔드는 아침이다
은행 앞에서 푸성귀 팔던 할머니는 한겨울은 다가오는데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며 풀잎처럼 고개 떨구고
두 손끝 호호 분다
오십 대 중반 퇴직한 후배는 학교 앞 골목길에서 밥장사하다가
월세 낼 벌이도 안 돼 보증금만 날린 채 가게 문을 닫고
가게 문처럼 덜컹거리는 심장을 앞세우고 기러기로 떠돌고 있는데
보도블록은 말없이 귀를 세우고
비밀의 통로인 양 세상 이야기들을 삼키고 있다
리어카 사과 장수는 간밤에 사과가 다 얼었다며
사과 같은 두 볼을 쓸어내리는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한쪽 귀 닫고 감- 감-
아득한 나라 저편, 아득한 달 속에서
노란 옥토끼로 떡방아 찧고 떠 있다

 

 

 

 

 

이영춘 | 1976년 『월간문학』 등단. 시집 『시간의 옆구리』 『봉평 장날』 『노자의 무덤을 가다』 등. 고산윤선
도문학대상, 유심작품상 특별상, 천상병귀천문학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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