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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당/2020년 봄호

[계간 문파문학 2020 봄호 시마당] 조창환-쥐를 물고 가는 뱀

쥐를 물고 가는 뱀

 

 

쥐를 물고 가는 뱀을 만났습니다
돌로 쳐 죽일까 하다가 그냥 놓아 주었습니다
저 목숨도 살려고 하는 짓인데 싶어 그리 한 줄 아시겠지만
아니올시다, 내 목숨 편히 살고 싶어 그리했습니다
시인 권달웅이 소싯적에 개구리를 물고 가는 뱀을 만나
물푸레나무 작대기로 내리쳐 때려죽였다가
찔레 덤불에 길게 축 늘어졌던 그놈이 
밤이면 살아서 세모 대가리를 쳐들고
꿈틀거리며 기어들어와 혓바늘을 날름거리며
독 있는 천남성 열매 같은 눈을 뜨고 
노려보더라* 하고 말한 생각이 나서 그리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어쩝니까? 
꿈마다 뱀이 나타나 고맙다고 머리 조아릴 줄 알았는데
어럽쇼? 뱀은 안 나타나고 쥐가 나타나
단추 구멍 같은 눈에 눈물 글썽거리며
나를 빤히 노려보지 뭡니까? 
인정머리 없는 인간아 
불쌍한 건 뱀이 아니라 쥐라는 것도 모르는
무식하고 어리석은 바보 천치 같은 인간아 
죽은 쥐한테 호되게 꾸지람 듣고 꿈 깬 날 아침엔
문밖에 찬바람 불었습니다 
여의도에서는 도둑놈이 도둑놈 잡는 법을 만들었다고  
신문에 크게 났습디다
쥐를 물고 가는 뱀을 돌로 쳐 죽일 걸 그랬습니다

 

 

 

조창환 | 1973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허공으로의 도약』 『벚나무 아래, 키스자국』 『마네킹과 천사』 등. 편운문학상, 한국시협상, 한국가톨릭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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