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주신 별을 잘 받았습니다
닷새째 추위 지나 오늘은 날이 따뜻합니다
하늘이 낯을 씻은 듯 파랗고
나뭇잎이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소풍 나오려 합니다
긴 소매 아우터를 빨아놓고 흰 티를 갈아입어 봅니다
거울을 닦아야 지은 죄가 잘 보일까요?
새 노래를 공으로 듣는 것도 죄라면 죄겠지요
외롭다고 더러 백지에 써보았던 시간들이 쌓여
돌무더기 위에 새똥이 마르고 있네요
저리 깨끗한 새똥이라면 봉지에 싸 당신께 보내고 싶은 마음 굴뚝입니다
적막을 끓여 솥밥을 지으면 숟가락에 봄 향내가 묻겠습니다
조혼의 나무들이 아이들을 거느리고 소풍 나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립니다
오늘은 씀바귀나물의 식구가 늘어났습니다
내 아무리 몸을 씻고 손을 닦아도 나무의 식사에는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밤이 되니 쌀알을 뿌린 듯 하늘이 희게 빛납니다
아마도 당신이 보내주신 것이겠지요
잘 닦아 때 묻지 않게 간직하겠습니다
보내주신 별을 잘 받았습니다.
이기철 | 1972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청산행』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산산수수화화초초』 등. 한국어문학회 회장, 대구시인협회 회장 역임. 현 영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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