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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당/2020년 봄호

[계간 문파문학 2020 봄호 시마당] 권기선-힘들다는 말은 가장 순수한 표현이었어

힘들다는 말은 가장 순수한 표현이었어

 

 

기분이 좋아도 웃지 못했어,

좋지 않을 날들을 먼저 걱정해서

밝은 전망

근사한 조명의 카페 세련된

사람들

“내일 지구가 멸망하면?” 이런 깔끔한 불안은 아니라서

어지러워서

바보 같다고 말할지 몰라,

아마도 그렇겠지

예를 들면 나는 여행을 망설였어

내 행복과

아버지와 어머니를 저울질했어, 우리 가족은 여행을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먹고 사는 일이 먼저

그런 건

티브이에 나오는 여행 프로그램으로 충분해 유명한 사람들이 대신 가서 보여주니까

우리 가족의 여행은 방안에서 이루어졌으니까

“내가 여행을 누려도 될까.”

어쩌면

내 우울은 여기서 시작된 건지 몰라

고요한 마음으로 사상을

사랑을

충전하고 싶어

아련한 일이 아냐

슬퍼하려는 일이 아냐

그것보단

자꾸만 사진을 들여다보는 일

흑백의 마음은 담백

컬러의 옷은

선샤인,

나는 우리가 점점 더 바다의 표면만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어

넓지만 얕은 정보를 누구나

말하곤 하지

우리의 지식은 손안에서 이루어지니까

깊이를 가늠해야 할 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은 어때?

나는 통곡했어

한참이 지나 책을 다시 폈지

눈물에

영토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

정치인이 우는 것을 본 적은 잘 없지?

그들의 눈물엔

‘팩트 체크’가 필요해

예민하고

가시 돋은 언어는

복잡해

많은 말에 대한 피로

단지 나는

돌아갈 집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야

다들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술에 취해

하는 말도 같았어

넓은 공간

작고 많은 테이블

시끄러운 사람들

“죽고 싶다”

이런 말이 자연스러운 세상 같아서,

 

 

 

 

권기선 |201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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