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당신과 레인코트
여름 하면 첫 번째로 떠오르는 목록 중
비의 냄새만으로
장밋빛 잠에 취하게 만드는 비법을 알고 있다고
당신은 깔깔거린다
노란 레인코트의 당신을 본 그날
이미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고
여름의 와인 잔 속으로
알몸을 텀벙텀벙 빠뜨리며
거짓말처럼
이 계절이 영원히 끝나버리지 않기를 바랐는데
나와 당신과 레인코트 그리고......
미안해, 뭔가 썩 어울리는 말이 떠오르지 않았어
레인코트를 걸친다는 건
빗방울 소리로 세상을 뒤덮는 일이고
축축한 시선의 무단침입을
정중하게 거절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했지만
숲으로 빚은 바람과
먼바다를 스쳐온 바람의 차이만큼
처음부터 우리 태생이 달랐던 건 아니었을까?
가끔 당신은
레인코트 대신 우산을 집어 들곤 했지
나는 더러워진 레인코트를 분리수거함 통에 구겨 넣으며
그렇게 몇 번의 여름을 탕진해버렸고
한여름에 마주친 폭설처럼
어떻게 어디서 길을 잃어버렸는지 몰랐는데
그해 여름 문장은 유난히 길었고 다음 해 봄은 지독히 멀었지
우린 각자 서로 다른 일상으로 되돌아가 버리고
고요하게 빛나던 레인코트와
커피 자국이 섞인 얼룩들이 맞닿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지금,
갇혀버린 여름의 수영장 수면 위로 목마른 겨울이
흘러넘치고 있는데
이만영 | 2019년『시인광장』등단. 근로자문학제 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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