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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당/2020년 봄호

[계간 문파문학 2020 봄호 시마당] 이만영-나와 당신과 레인코트

나와 당신과 레인코트

 

 

여름 하면 첫 번째로 떠오르는 목록 중

 

비의 냄새만으로

장밋빛 잠에 취하게 만드는 비법을 알고 있다고

당신은 깔깔거린다

 

노란 레인코트의 당신을 본 그날

이미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고

 

여름의 와인 잔 속으로

알몸을 텀벙텀벙 빠뜨리며

거짓말처럼

이 계절이 영원히 끝나버리지 않기를 바랐는데

 

나와 당신과 레인코트 그리고......

미안해, 뭔가 썩 어울리는 말이 떠오르지 않았어

 

레인코트를 걸친다는 건

빗방울 소리로 세상을 뒤덮는 일이고

축축한 시선의 무단침입을

정중하게 거절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했지만

 

숲으로 빚은 바람과

먼바다를 스쳐온 바람의 차이만큼

처음부터 우리 태생이 달랐던 건 아니었을까?

 

가끔 당신은

레인코트 대신 우산을 집어 들곤 했지

나는 더러워진 레인코트를 분리수거함 통에 구겨 넣으며

그렇게 몇 번의 여름을 탕진해버렸고

 

한여름에 마주친 폭설처럼

어떻게 어디서 길을 잃어버렸는지 몰랐는데

 

그해 여름 문장은 유난히 길었고 다음 해 봄은 지독히 멀었지

우린 각자 서로 다른 일상으로 되돌아가 버리고

 

고요하게 빛나던 레인코트와

커피 자국이 섞인 얼룩들이 맞닿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지금,

갇혀버린 여름의 수영장 수면 위로 목마른 겨울이

흘러넘치고 있는데

 

 

 

 

 

이만영 | 2019년『시인광장』등단. 근로자문학제 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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