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마당/2020년 봄호

[계간 문파문학 2020 봄호 시마당] 정재율-사랑만 남은 사랑 시

사랑만 남은 사랑 시

 

 

읽다가 책을 덮었다

사랑이 모자라서

 

눈들이 깨끗해지기 위해

창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더 많은 사랑을 위해

창문을 그렸다

 

컵을 던져도

깨지지 않는

 

책장에 쌓이는 먼지처럼

손으로 쓸어도 날아가지 않는

 

풍경들을 뒤로 한 채

 

겨울이 되면 재가 흩날리는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창문에는 죽은 생명체들이

입김처럼 불어나고

 

덕지덕지 얼룩들이 생긴다

 

컵을 던지면

분명 손잡이가 깨졌는데

 

멜로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사랑에 실패해도

다시 새 삶을 살 수 있었다

 

더 청렴해진 마음으로

빗방울을 그렸다

 

붓과 물감으로

더 자세하게 그렸다

 

사랑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사랑을 하고 싶어서

 

열심히 창문을 닦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써진 편지를 발견했다

 

턱을 너무 오래 괴어

팔꿈치가 아파왔다

 

새 구절을 발견할 때까지

 

사랑에 관한 편지를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정재율 | 2019년『현대문학』등단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