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만 남은 사랑 시
읽다가 책을 덮었다
사랑이 모자라서
눈들이 깨끗해지기 위해
창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더 많은 사랑을 위해
창문을 그렸다
컵을 던져도
깨지지 않는
책장에 쌓이는 먼지처럼
손으로 쓸어도 날아가지 않는
풍경들을 뒤로 한 채
겨울이 되면 재가 흩날리는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창문에는 죽은 생명체들이
입김처럼 불어나고
덕지덕지 얼룩들이 생긴다
컵을 던지면
분명 손잡이가 깨졌는데
멜로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사랑에 실패해도
다시 새 삶을 살 수 있었다
더 청렴해진 마음으로
빗방울을 그렸다
붓과 물감으로
더 자세하게 그렸다
사랑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사랑을 하고 싶어서
열심히 창문을 닦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써진 편지를 발견했다
턱을 너무 오래 괴어
팔꿈치가 아파왔다
새 구절을 발견할 때까지
사랑에 관한 편지를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정재율 | 2019년『현대문학』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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